매일신문

[문화 레시피]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는 사람들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지워주는 유품정리사
고독사·자살 등 다양한 죽음의 모습 마주해
외로운 죽음 막도록 주변에 대한 관심 촉구

김새별·전애원 작가의 논픽션 에세이
김새별·전애원 작가의 논픽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친구네 집 건물에서 누가 자살했대. 벌써 두 번째래." "거기 신축 아냐? 어쩌냐, 매일 지나다니기 찝찝하겠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들의 짧은 대화에서 느껴지듯 누군가의 죽음은 우리에게 다소 불편하고 꺼림칙하게 다가온다. 우리 이웃에서 일어난 죽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런 숱한 편견 속에서도 필연적으로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확히는 죽음 후 고인의 마지막을 보내주는 사람들. '유품정리사' 이야기다.

유품정리사는 고인이 죽음을 맞이한 장소를 청소하고 중요한 유품들을 정리해 유족에게 전달하는 일을 한다. 다소 생소했던 이 직업은 최근 TV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등을 통해 대중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10여 년 이상 유품정리 일을 해온 김새별·전애원 작가가 쓴 책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은 저자가 죽음의 현장에서 마주한 생생한 기록들을 담았다.

그들이 만난 죽음의 모양은 저마다 다양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고독사, 자살, 범죄 피해로 인한 죽음이었다. 시신이 방치돼 부패한 탓에 뒤처리가 곤란하거나 슬픔으로 인해 유족들이 직접 유품을 정리하기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품정리 과정을 통해 떠난 이가 남기고 간 마음의 흔적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어떤 상황이 고인을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마지막까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과거 중장년층 고독사 비율이 훨씬 높았으나 최근에는 그 빈도가 비슷할 정도로 청년층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 쪽방촌의 한 입주민이 선풍기 바람을 쐬며 더위를 피하고 있다. 연합뉴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모티브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브 투 헤븐: 유품정리사입니다'의 한 장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삶은 없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두 가지 죽음이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고시텔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고 4주 후에 발견된 스무 살 청년. 그의 3평 남짓한 조그만 방은 대입 재수학원 수강증, 기계공학 전공서, 아르바이트 유니폼 등 고단한 일상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한 새내기 000입니다'라고 적혀있는 책상 앞 메모는 그가 얼마나 안정적인 미래를 갈망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줘 가슴이 아려왔다.

또 작업을 마친 저자가 유족에게 아버지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전달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아들은 '냄새가 난다'며 액자를 곧바로 유품정리 차량 적재함으로 던져버렸다. 그 순간 액자의 유리가 깨지며 액자 뒷면에 있던 현금과 봉투가 흘러내렸는데…. 장례비용으로 추정되는 오백만 원가량의 현금과 집문서였다. 부모는 자식들이 차마 자신의 사진을 버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귀중품을 액자 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내림굿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비관해 삶을 포기한 20대 여성, 사랑이 증오로 변한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 '외로움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독거 중년까지. 저자가 맞닥뜨린 현장은 우리가 몰랐던 가슴 아픈 죽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책이 세상에 나온 지 5년이 흐른 지금도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외롭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고 있다. 한해 국내 자살률 OECD 국가 1위(2018년 기준), 무연고 사망자 2880명(2019년 기준) 등 우울한 지표들이 이를 방증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대면'이 일상이 된 이 전염병의 시대는 사람들을 더 외진 곳으로 고립시키고 있다.

과거 중장년층 고독사 비율이 훨씬 높았으나 최근에는 그 빈도가 비슷할 정도로 청년층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 쪽방촌의 한 입주민이 선풍기 바람을 쐬며 더위를 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세상을 떠난 이의 인생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 이상 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 고독사, 자살, 범죄로 인한 사망…. 이런 비극이 사라져 나의 직업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자신이 지금껏 마주해 온 외로운 죽음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변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촉구하면서.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따뜻하고 친절한 말 한마디가 지금 힘든 터널을 지나가는 누군가에게는 진심으로 큰 힘이 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맞이하는 다양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국가적 책임을 무시할 수 없다. 점차 심화되는 부의 양극화 탓에 노력한 만큼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는 불평등한 구조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삶에 대한 의지를 앗아간다. 그럼에도 우리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외로운 죽음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도록 주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언젠가는 내가, 나의 가족이, 나의 이웃이 맞닥뜨릴지도 모를 죽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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