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라 한다. 대단한 착각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신이 만들어 두었다. 우리 인간은 창조를 하려 해선 안된다. 창작을 해야한다. 신이 만들어 둔 걸 이어붙이기만 하면 된다. 혹은 그것에 숟가락 하나 얹어서 조금 새롭게 보이도록 하면 된다.
여기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을 이용해 광고를 만든다면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을까? 강의할 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재미있는 대답이 쏟아진다. 그중 최고는 '스크린 골프장 광고'라는 초등학생이 있었다. 가장 오른쪽의 여인이 골프 하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말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외국엔 이삭 줍는 여인이 있구나. 한국엔 박스 줍는 여인이 있는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우리 집 앞의 할머니를 찾아갔다. 실제로 박스를 주워 하루를 버티시던 분이셨다. 하지만 광고를 만들겠다는 나의 열정이 지나친 나머지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할머니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을 내뱉은 것이다.
"할머니. 박스 주우시면 얼마나 버세요?"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자네가 그건 알아서 뭐 해? 당장 나가!"

하지만 할머니가 화를 내신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때 나는 미국에서 돌아와 대구에서 백수 생활을 하던 때였다. 마땅한 수입도 없이 공익 광고만 만드니 나의 행색도 처참한 상황이었다. 자연스럽게 할머니는 나를 본인의 경쟁상대로 보셨던 것이다.
"할머니. 저는 경쟁상대가 아닙니다. 할머니 같이 폐지 주우시는 분들을 도우러 온 광고인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할머니 미간의 주름이 펴졌다. 그러면서 마음도 여셨다.
"진작 말을 하지. 경기 좋을 때는 120원까지 쳐주는데 요즘에는 80원 밖에 못 받아."
충격이었다. 이렇게 박스를 많이 주워도 푼돈밖에 못 벌다니. 그런 마음으로 카피를 써내려갔다.
'외국엔 이삭줍는 여인이 있고, 한국엔 박스 줍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렇게 이 광고는 탄생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훌륭한 작품을 모방한 것이다. 실제로 그 할머니를 모델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자식들에게도, 그 할머니에게도 상처가 될까 봐.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우리 엄마를 등장시켰다. 그것도 옷을 세 벌이나 갈아입혀서 모두 다른 사람처럼 합성했다. 어머니 입장에선 황당했을 것이다. '백수 아들이 이런 것까지 시키나!' 하고 말이다.
아이디어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칠 뿐이다. 관심이라는 안테나를 머릿속에 켜두지 않으면 보지 못한다. 관심을 가지면 숱한 아이디어들이 세상에 떠다닌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것을 연결하면 된다.
아이디어는 그렇게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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