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논란에 휩싸여 설 땅을 잃은 쌍둥이 여자배구 스타플레이어 이재영·다영이 참으로 안쓰럽다.
도쿄 올림픽에서 4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선전을 보면서 이들을 떠올린 배구 팬들이 많았을 것이다. 두 선수가 있었다면 한국이 더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대표팀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김연경과 김수지, 양효진의 은퇴 선언으로 이들의 대표팀 복귀를 바라는 움직임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여자배구 레전드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여자배구 대표팀의 주역이다. 여자배구는 몬트리올 대회 동메달이 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이며, 이 메달은 우리나라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거머쥔 것이다.
조 전 감독은 지난 16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재영·다영이 충분히 반성한 뒤 오는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김연경과 김수지의 공백을 채워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여자배구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냐'는 질문에 "제 희망이 있다면 이재영·다영이 좀 더 많이 반성하고 성장하고, 성숙해져서 합류해 김연경, 김수지의 공백을 조금이라도 채워주면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연경 등이 빠진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에 필요한 전략을 묻자 "성장통은 겪어야 할 것 같다. 그 공백을 얼마나 빨리 채우냐가 우리 배구인이 할 일이다"고 했다.
오랜 기간 스포츠 스타의 영광과 좌절, 시련을 지켜봤지만, 이재영·다영 자매처럼 일순간 몰락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자유계약(FA) 체결로 돈방석에 올랐으나 도박 파문으로 돈을 포함해 많은 것을 잃은 전 야구 스타 삼성 라이온즈의 안지만을 보는 듯하다.
두 선수에 대한 배구 팬 등 국민의 시선은 잔인할 정도로 매몰차다. 학교폭력의 엄중함 때문이다. 인생사에서 학창 시절 나쁜 짓을 하는 등 일탈 행위 없이 성장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친구나 선배, 선생님에게 오해나 별다른 이유 없이 두들겨 맞거나 싸운 일 등이다. 그러함에도 두 선수의 폭력은 도를 넘어섰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는 여전히 부족하기에 국민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운동선수의 실력은 인성을 넘어설 수 없다. 스타가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 실력의 마지막 단계가 인성임을 알 수 있다. 고만고만한 선수로 머물다 사라지느냐, 대스타의 반열에 오르느냐는 부모 교육과 초·중·고 시절 함양한 인성에서 판가름 난다는 사실이다.
프로야구 마니아라면 '국민타자' 이승엽의 삼성 라이온즈 입단 동기 2명을 기억할 것이다. 강속구 투수였던 둘은 초창기 타자로 전향한 이승엽보다 더 주목받았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세 명 모두 경북고 출신인데 조기 은퇴한 두 선수는 야구장 밖의 사생활을 즐겼고, 이승엽은 그렇지 않았다. 기자는 이들의 경북고 재학 때 인터뷰를 통해 누가 스타가 될 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했다.
이런 논리와 국민 눈높이를 적용하면 이재영·다영 자매가 배구 선수로 다시 영광을 누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들이 몸담았던 전 소속팀 흥국생명은 2021-2022 시즌 선수 등록을 포기했다. 둘은 FA 신분이라 다른 구단의 영입이 가능했지만, 따가운 여론에 이들을 데려간 팀은 없었다.
선수 생명의 위기를 맞은 쌍둥이 자매의 남은 선택지는 해외 진출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한배구협회의 동의를 받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대한배구협회는 이들에 대한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을 거부하고 있다. 배구협회 규정 제1장 총칙 제3조(국내 선수 해외 진출 자격의 제한) 2항에 보면 (성)폭력, 승부조작, 병역기피, 기타 불미스러운 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였거나 배구계에 중대한 피해를 끼친 자는 해외 진출 자격을 제한한다고 나와 있다.
쌍둥이 자매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지난 2월 학교 폭력 논란에 휘말렸고, 배구협회로부터 국가대표 자격 박탈 징계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해외 진출이 100%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들을 영입하려는 해외 구단이 국제배구연맹(FIVB)을 통해 ITC를 발급받으면 된다. 지난 6월 터키스포츠 에이전시 CAAN은 "이다영이 그리스 PAOK와 계약했다"고 전했다. 지난 15일에는 이재영·다영이 그리스로 출국한 사실이 알려졌다. 두 선수 모두 PAOK와 계약을 마친 상태라고 한다. 두 선수가 그리스에서 뛸 수 있을지는 오는 9월 중순 FIVB의 해석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두 선수의 해외 진출까지 막는 건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다. 배구만을 위해 젊은 인생을 바쳐 성공했는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빼앗는 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가 아닌가.
스포츠 가치에서 도덕성이 우선해야겠지만, 기술을 바탕으로 한 실력은 팬 확보 등 흥행을 좌우한다. 배구 실력을 인정받고 국가대표로 이미 검증받은 두 선수가 해외 진출을 통해 실력을 더 가다듬고 태극마크를 다시 달기를 기대한다. 그 전제로 두 선수는 진심 어린 사과로 피해자들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일본 스포츠매체 다이제스트는 지난 18일 "이재영·다영은 정식으로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등 학교폭력 피해자로부터 '안 좋은 감정은 다 잊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 선수 거취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먼저 사람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고는 지금 같은 어정쩡한 상황이 계속될 뿐이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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