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뉴스 Insight] 전쟁 대비 한미 연합훈련은 흥정 대상 아니다

'확고한 준비태세'는 말이 아닌 한미 실제 훈련으로…북한 입김에 춤추는 정권, 국가 안보는 뒷전

한미 연합훈련 사전연습이 시작된 지난 10일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서 고공정찰기 U-2S가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연합훈련 사전연습이 시작된 지난 10일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서 고공정찰기 U-2S가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세계사가 전쟁사임은 익히 아는 일이다. 인류는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와 마찬가지로 전쟁(싸움)을 통해 뺏거나 빼앗기며 발전을 거듭해왔다. 규모 차이가 있을 뿐 지구상에서 전쟁이 멈춘 순간은 없을 것이다. 미군 철수가 막바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끝날 것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국과 소련, 미국이 차례로 쓴맛을 본 아프가니스탄의 다음 상대는 중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끊임없는 외세 침략과 수탈을 이겨내고 오늘의 발전을 이뤄냈다. 세계열강이 호시탐탐 노리는 반도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외세 침략만 있었던 게 아니다. 고조선을 토대로 한 단일민족 체제에서도 분단과 전쟁, 통일을 거듭해왔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자웅을 겨룬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우리는 현대사에서 한국전쟁이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있다. 6·25는 아직 휴전상태로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북한의 도발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멈춘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6·25 이후 끊임없이 전쟁 준비를 해왔다. 전쟁 억지와 평화 통일을 위한 군사력 강화다. '60만 대군'을 자랑하는 징병제를 채택하고, 세계 최고 군사력을 자랑하는 '천조국'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 미국과는 6·25와 베트남전쟁을 함께 치르며 혈맹임을 과시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 다수는 전쟁을 머리에서 지우고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우리가 북한보다 월등하기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북한의 국지적인 도발 행위를 애교로 보고, 북의 핵 개발을 통일 시대의 우리 자산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우리 국민의 안보관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난이란 고통을 체험한 세대들이 줄어들면서 북의 위협을 가볍게 보는 국민이 더 늘었기 때문이다. 주둔 중인 주한미군을 통일을 방해하는 외세로 보고 철수를 외치는 세력도 존재한다.

지난 16일 공식 시작된 후반기 한미 연합지휘소훈련(21-2-CCPT)은 우리 국민의 혼란한 안보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번 훈련은 주말을 제외하고 26일까지 9일간의 일정으로 야외 실 기동훈련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로 진행된다. 우리 합동참모본부는 "이번 훈련은 연례적으로 실시해 온 방어적 성격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의 지휘소 훈련으로, 실 기동훈련은 없다"고 했다.

이번 훈련에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양국 모두 필수 인원만 참가하고 있다. 같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시행한 지난 3월 전반기 훈련 때보다 규모가 더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현 정부가 바라는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할 미래연합사령부의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은 이번에도 미뤄졌다. 전작권 전환 시기를 연내 도출한다는 계획은 당연히 무산됐다. 대신 양국 군 당국은 지난 훈련과 마찬가지로 한국군 4성 장군(대장)이 지휘하는 미래연합사 주도의 예행연습을 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반응도 주목된다. 북한이 훈련 기간 맞불 성격으로 대규모 화력 훈련이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무력시위를 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앞서 10∼13일 이번 훈련의 사전연습 격인 '위기관리 참모훈련' 개시에 맞춰 비난 담화를 낸 데 이어 1년여 만에 재개된 남북 연락 채널을 통한 정기 소통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지난 15일 '침략적 정체를 드러낸 자멸적 망동' 제목의 기사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우리 공화국을 기어이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이며, 우리 인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조선반도의 정세를 위태롭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북침 전쟁연습"이라고 비난했다. 매체는 "전쟁연습과 평화는 양립될 수 없다. 남조선 당국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요란스럽게 떠들어 온 평화와 신뢰 타령이 한갓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6·15 공동선언실천 일본지역위원회 회원 등이 지난 3일 주일 미국 대사관 인근 도로변에 모여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주장하는 집회를 마치고, 일본 경비경찰이 제시한 인원 제한 조건에 따라
6·15 공동선언실천 일본지역위원회 회원 등이 지난 3일 주일 미국 대사관 인근 도로변에 모여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주장하는 집회를 마치고, 일본 경비경찰이 제시한 인원 제한 조건에 따라 '10명 단위'로 한 조를 이루어 펼침막을 앞세운 채 대사관 쪽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외에서는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를 비롯한 관련 시민단체 88곳의 연대체인 8·15대회 추진위원회가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추진위는 15일 온라인에서 '광복 76주년 한반도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대회'를 개최하고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으로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공동호소문을 채택했다.

앞서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설훈·진성준, 무소속 윤미향 의원 등 범여(汎與) 의원 74명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자"고 주장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일 담화에서 남북 통신선 복원의 대가로 연합훈련 취소를 요구한 지 나흘 만에 여권 다수 국회의원이 이런 주장을 하면서 북한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우리 군과 통일부는 원론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통일부는 17일 "한미 연합훈련 중 북한의 태도와 반응 등을 보다 면밀히 주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전에도 연합훈련 기간에 북한이 반응을 보여오는 시기가 특정돼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며 "향후 북한의 태도를 주시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북한군 동향과 관련 우리 군 관계자는 "한미 간 긴밀한 공조 하에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확고한 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는 지난 3월 시행된 전반기 한미 연합훈련에 앞서 대규모 부대가 야전에서 실제로 기동하는 훈련을 되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성우회는 입장문을 통해 "한미 연합훈련은 북학의 핵 위협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지휘소 연습과 실 기동훈련을 통해 군사대비 태세를 보장하는 것이다. 한미 동맹은 강력한 군사동맹체 그 자체로써 핵우산 제공에 결정적 역할을 하며 미국 측의 전략자산, 전시 증원전력 전개 등은 시뮬레이션만으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전직 한 공군 장성은 '한미 훈련 축소에 노병은 분노한다'는 언론 기고를 통해 후배 장군들에게 충고했다. 그는 "잇단 군 기강 문란의 근본 원인은 좌파정권 이래 주적 개념이 호도되고 장병들의 안보관이 무력해진 탓이다. 강장 밑에 약졸은 없다. 평시 땀을 많이 흘려야 전시 피를 덜 흘린다. 훈련 없는 군대는 존재 가치가 없다. 청와대 눈치 보지 말고 적이 겁내도록 한미 연합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정권 아니라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군대가 돼야 한다"고 했다.

북한 독재자 김정은·여정 남매의 웃음과 기침 소리에 요동치는 문재인 정권 운영 세력에 분노하는 국민이 많다. 컴퓨터로 진행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마저 연기하거나 하지 말자는 데 대해서는 할 말을 잃는다. 국가 안보만은 정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국가 안보는 군과 외교 당국 등 전문가 집단에 맡기자. 군을 정치 색채에 물들게 하면 안 되며 참된 군인은 물들지 않아야 한다. 전쟁과 북의 도발에 대한 '확고한 준비태세'는 말이 아닌 실제 훈련으로만 가다듬을 수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