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중파, 종편을 막론하고 황혼을 즐길 나이에 손주들을 돌보느라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는 조부모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눈에 띈다.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있는 상황이라 어떨 땐 감정이입까지 해가며 시청하는 편이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18년 보육 실태 조사에 따르면, 아이 부모를 도와 가정에서 영유아를 돌보는 사람 10명 중 8명이 조부모로 조사됐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조부모가 육아의 주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는 육아를 하는 여자들의 눈물겨운 일생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 엄마를 뜻하는 영어 단어 '맘(Mom)'과 수학이나 컴퓨터 공학에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순서화된 절차를 뜻하는 '알고리즘(Algorithm)의 합성어인 '맘고리즘'이다.
맘고리즘은 임신, 출산, 육아, 직장생활, 부모에게 돌봄 위탁, 퇴사, 경력 단절, 자녀 결혼, 손자 출생, 황혼 육아 등 생애주기를 따라 육아를 반복하게 되면서 평생 육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현실을 표현한 말이다. 즉, 임신과 출산 후 회사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다가 내 자녀가 출산 후 직장에 복귀하며 맡기는 손주를 돌봐야하는 여성의 현실과 미래를 잘 표현하고 있는 단어다. 다 키워 놓은 자식에 대한 사후 관리(A/S)일까? 육아휴직이 어렵거나 경제적 여건상 육아가 힘든 현실에 자식들을 위해 다시 육아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노년기에 큰 기쁨이며, 심리적인 안정감과 행복을 주기도 하고 함께 하는 아이 또한 정서적 안정감을 느낀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육아 활동들이 강도 높은 육체적 노동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밭 맬래? 손주 볼래?'하면 밭 맨다고 한다. 자식 생각하는 마음에 기꺼이 황혼 육아를 선택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고 몸에 무리가 오기도 한다. 청소, 빨래 등의 집안일을 하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와 온몸으로 놀아주고 따라다니며 식사까지 챙겨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의 삶을 즐겨야 하는 때에 황혼 육아에 시달리는 조부모들이 늘어나면서 '손주병' 등 다양한 신조어도 생겨났다. 조부모의 역할이 기존 부모의 역할과 같이 중요해지는 것을 뜻하는 할빠(할아버지+아빠), 할마(할머니+엄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짠하다.
얼마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몇 군데 들러 상담을 받았는데 가는 곳 마다 '어머니는 죄인이에요. 자기 자식 부모님께 맡기면 죄인처럼 사셔야 돼요.'라는 말을 듣고 며칠 멍했던 적이 있다. 죄송한 만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걸 강하게 표현한 것일 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외국 속담이 있다.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 지역사회 모두가 노력해야 비로소 한 아이가 온전하게 자랄 수 있다는 뜻처럼 아이 키우는 문제는 국가와 시대를 불문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를 온전히 잘 길러내기 위해 애쓰시는 부모님은 매달 드리는 금전적 보상보다 자녀들의 따뜻한 관심과 위로, 말 한마디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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