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진행된 긴 아프간 내전에서 탈레반이 승리했다. 카불이 함락되었고, 아프간 지도자들과 기득권층의 꼴불견 줄행랑을 보고 있다. 아프간 상황을 군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군사 지도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제대로 봐야 한다.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한다. 탈레반의 승리는 '정치적 의지가 강한 군대가 종국적으로 승리한다'는 4세대 전쟁 이론의 검증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1990년 걸프 전쟁이 끝난 이후 미국 전략가들은 '4세대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현대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4세대 전쟁을 연구한 저명한 미 해군의 전략가인 하메스는 전쟁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를 중심으로 근·현대 전쟁의 세대를 분류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1세대는 상비군 규모가, 2세대는 화력의 위력이, 3세대는 기동력 수준이 승패를 결정한다.
아프간 정부군 규모는 30여만 명이다. 정부가 군인 급료로 지불하는 '등록된 군인'의 숫자다. 이에 반해 탈레반은 6만여 명의 전사로 구성돼 있다. 이 숫자만큼 전쟁 중에 탈레반 군인들은 목숨을 잃었다. 탈레반의 주요 전투 장비는 소총, 로켓 추진 수류탄이고 기동 장비는 오토바이다. 일부 군인들은 군화가 없어 슬리퍼를 신고 전쟁을 수행했다. 반면에 아프간군은 국제사회 지원금을 재원으로 연간 50억 내지 60억 달러를 사용했다.
아프간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한 이후 미국은 약 20여 년 동안 830억 달러의 경제 지원을 했다. 아프간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나토 등 다국적군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1·2·3세대 전쟁 개념에서 볼 때 정부군이 패배하려고 해도 패배할 수 없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탈레반의 정치적 의지가 정부군을 상대로 초격차 전쟁 수행 능력 비교를 극복한 것이다. 우리 군의 용어로 정신 전력이 상비 무장 전력을 이긴 것이다.
제4세대 전쟁의 관점에서 남북 군사력을 비교하면 어떨까? 핵무기를 제외한 주요 장비 면에서 우리는 우월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남북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무기 체계 지수 비교에서는 공군, 해군 등에서 앞서고 있다. 그러나 정신 전력을 비교하면 우리가 절대 우위에 있는가? 우리 군사 지도자들이 단호하게 '압도적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솔직히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종전이 아닌 교전이 중단된 휴전 상태에서 우리 장병들이 '주적'이 북한군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국군의 대적관, 주적 개념이 제대로 정리되어야 한다.
우리 국민 일부도 남북 간 경제력 차이를 근거로 북한노동당의 대한민국 공산화 의지와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인식 오류를 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규약에는 대한민국 공산화가 그들의 존재 이유로 각인돼 있다. 우리가 이렇게 잘살고 미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설마 북한군이 우리를 군사적 수단으로 적화하려 하겠는가? 대단한 오류다. 미국은 아프간 정부군 대신에 탈레반과 평화조약에 합의하고 미군 철수를 결정했다. 북한이 줄기차게 미국에 요구하는 평화협정의 의도와 같은 맥락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남북 관계를 위한 정부 회담이 간단없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북한군을 탈레반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군은 북한군을 '핵과 탈레반식 정치 의지를 가진 주적'으로 인식해야 북의 야욕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 북측보다 조금 더 부유하다고 해서, 김정은 남매가 이끄는 노동당과 북한군의 정치 의지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인식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사회단체가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 군은 맹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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