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언론의 눈을 사로잡은 이슈는 '아프가니스탄 사태'다. 2001년 9·11 사태 직후 미국의 침공으로 와해된 탈레반이 20년 만에 수도 카불에 재입성했다는 뉴스가 내외신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이번 아프간 사태의 해석 기호를 하나 꼽자면 단연 '카불 공항'이다. 다급한 피난민들로 빽빽이 들어찬 카불 공항 활주로는 아프간의 현실을 대변한다. 1996년 이슬람 극단주의 정파 탈레반의 폭정을 몸으로 기억하는 이들의 엑소더스 행렬에서 어두운 아프간 역사가 돋을새김하듯 부각된다. 카타르행 미군 C-17 수송기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640명의 아프간 사람들이나 동체에 매달렸다가 추락사하는 장면은 비극 그 자체다. 이 장면에서 1950년 흥남 철수나 1975년 사이공 탈출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카불을 접수하자마자 탈레반은 국호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공화국'에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토호국'(Islamic Emirate)으로 바꿨다. 소련군 철수(1989년) 이후 내전 끝에 '아프간 이슬람 민주공화국'을 무너뜨린 탈레반이 1996년 도입한 그 국호다. 똑같은 국호의 복귀는 자연히 아프간 사람에게 탈레반 폭정의 기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권력 투쟁과 유혈 정변으로 점철된 아프간 현대 정치사는 왕정과 공화정, 신정, 공산 통치, 이슬람 극단주의 등 다양한 정치 형태가 보여주듯 분열과 대립의 연속이었다. 이런 정치의 불안은 민생 불안과 인권 침해 등 많은 부작용과 깊은 상처를 만들었다. 특히 여성과 노약자의 삶은 최악이었다. 아프간 태생 미국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베스트셀러 '연을 날리는 아이들'(2003년)과 '천 개의 찬란한 태양'(2007년)에는 1960년대 이후 아프간 여성들과 아이들이 겪은 고난이 격동의 아프간 역사와 함께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2001년 10월 7일 개전 이후 미국은 20년간 약 2조 달러를 쏟아부었다. 영국과 소련이 그러했듯 '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 땅에 또 다른 무덤만 만들고 떠났다. 외세 간섭과 정변·내전으로 점철된 아프간의 현실은 매순간 다른 빛의 스펙트럼을 만들어왔지만 아직도 어두운 역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다시 잘린 손목과 회초리, 부르카, 문화재 파괴 등 야만의 기운이 재발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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