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을 발효시켜 만드는 장, 채소를 발효시킨 김치, 생선을 발효시켜 만드는 젓갈, 그리고 곡물을 발효시켜 만드는 술까지. "인류는 발효음식의 자손들"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내놓은 발효 음식의 인문학 개론서, '발효음식 인문학'이다.
맛있는 발효음식을 만드는 세세한 레시피가 적힌 책은 아니다. 발효는 식품학적 현상일 뿐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라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2013년 한국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까닭이다. 발효는 비단 우리의 문화 영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미지만 떠올려도 인상을 찌푸릴 법한 중국의 처우더우푸(臭豆腐), 발트해 연안의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은 타인에겐 혐오식품이지만 그들에겐 별미다.
발효음식은 기다림이 있어야 비로소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정성이 반(半)인 음식이다. 발효음식인 술, 맥주는 물론이고 제사에서 발전한 가양주도 정성으로 빚는다는 말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문화사적 의의로 종교가 결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우리 민족의 발효 문화에 집중한다. 장, 김치, 식초, 젓갈, 식해, 술을 중심으로 발효 한식의 역사와 문화, 정서, 그리고 과학을 살핀다. 그러면서 굴비처럼 잘 엮어진 발효 한식 밥상은 곰삭은 연금술적 변화 산물로 차려진 최고의 밥상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특히 저자는 대두 발효식품인 장(醬)에 관해서라면 한국은 종주국이라 할 만하다고 강조한다. 장은 식물성 단백질을 고농도 염분과 미생물의 작용으로 발효시킨 것이다. 단백질은 다시 아미노산으로 분해돼 구수한 향미가 나고 오랜 기간 저장이 가능해진다.
장 제조 기술의 발달은 우연이라기보다 과학의 영역으로 접근해야한다. 평지가 부족한 탓에 재배 가능한 농작물은 제한적이었다. 금방 시들고 썩는 채소는 저장성이 떨어졌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콩은 효자나 다름없었다. 고기를 대체할 단백질의 원천이기도 했다.
발효음식 장인을 인터뷰한 현장 기록도 담겼다. 현재 발효음식을 담고 있는 개인이나 공동체 등을 대상으로 장인(匠人)의 개념부터 장, 김치, 장아찌, 젓갈, 식해, 전통 식초, 술 분야의 장인을 만나 기록한 현장 보고서다.
저자 정혜경은 한국식생활문화학회 회장과 대한가정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 서구 영양학을 공부했지만 한식요리를 배우면서 한국 음식 문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성에 매료됐다고 한다. 425쪽. 3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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