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서예란 새로운 서예 접근이죠. 전통서예와 차이점은 문장 나열이나 서체에 구속되지 않고 재료도 먹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화면 전체의 조형언어는 문자이지만 먹에만 국한하지 않고 아크릴 물감 등을 혼용하고 한지가 아닌 도자기, 동판, 삼베, 크리스털, 골판지 등을 이용해 작품을 합니다."
10대 때 서예와 인연을 맺었고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현대서예가 일사(逸史) 석용진(63)이 50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장은 이전 개관한 주노아트갤러리 in 아트도서관(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길 131)의 초대전이며, 작가가 30여년 간 추구해온 '현대서예'의 흐름을 한 눈에 비교·관람할 수 있는 작품 30점을 선보이고 있다.
1989년 제1회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석용진은 이 시기부터 '현대서예'라는 자신만의 독보적 창작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문자를 주제로 한 서예'와 '그림을 근간으로 한 문인화와 서양화', '각(刻)을 바탕으로 한 전각'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접목하는 작업을 걸어왔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작가가 지난 세월동안 줄곧 모색하고 추구해온 명제인 '언어의 모호한 약속'에 관한 작품들을 비롯해 문자, 산, 오리, 호랑이, 코끼리 같은 오브제가 한 화면에 동시에 등장하는 '부조형식 작품'을 볼 수 있다.
"소쉬르의 구조주의적 언어이론에 따르면 언어는 기표(문자 그 자체)와 기의(단어의 뜻이나 의미)의 유연적 약속일 뿐 만약 이 둘을 떼어놓는 순간, 다시 말해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언어는 그 의미가 모호해지면서 혼란을 일으킵니다. 이게 언어의 모호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죠."
그의 작품 '조가화무'(鳥歌花舞·새가 노래하고 꽃이 춤춘다)는 화면 안에 한자가 초서체로 써졌고 그 옆에 인쇄체 영문 'Birds sing and Flowers dance'가 적시돼있다. 이를 두고 석용진은 한자 문화권 사람들이 본 '조가화무'의 느낌과 한자를 모르는 비한자권 문화 사람들이 본 영문의 느낌은 확연히 다를 수 있다고 했다.
"언어는 이처럼 굳어있는 게 아니라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독해가 가능하므로 이게 '모호한 약속'이 아닐 수 없으므로 동서양 문자의 대비를 통해 문자가 지닌 약속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나의 작업의 중추입니다."
석용진 작품세계의 또 다른 흐름은 '부조형식 작품'이다. 부조형식 작품들은 그가 초창기 서예와 문인화·서양화의 접목을 시도한 것과 달리 전각기법에서 파생됐다. 어느 날 청동기 유물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보고 서체의 아름다움과 그 녹슨 형태에 사로잡힌 작가는 전각기법을 이용해 부조형식 작품을 재현함으로써, 나무판형에 글씨와 그림을 그리고 표면에 에폭시를 덮어 화면 여기저기에 갈라진 미세한 틈까지 구현해냈던 것이다.
석용진은 이번 50회 개인전을 통해 그동안 그가 구축해 온 '모호한 약속'류의 작품들이 문자를 해체한 철학적 반성이었다면, '부조형식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공시적 융합이라는 걸 확연하게 보여준다. 전시는 9월 25일(토)까지. 문의 010-3588-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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