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종교간 대화와 종교자유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우리는 각자 있는 곳에서 현재, 이 순간의 삶을 늘 살아간다. 이제부터는 종교적 삶의 근본적인 요소들과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어느 정도 할 것인가?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큼 할 예정이다.
종교의 종류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종교에 대한 태도는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둘 중 하나이다. 그런데 각 태도를 조금 깊이 고찰해보면 믿지 않는 쪽을 선택하여 종교인이 아닌 상태로 있더라도 이 역시 믿는다는 태도에 속한다. 수많은 종교들 중 자신이 선택한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은 그 종교를 믿고 있는 것이고, 종교를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사람 역시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믿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종교를 가질 것인지 말 것인지는 종교의 자유가 인간의 기본권에 속한다는 사실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우리나라에서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어느 특정 종교를 믿도록 권유받을 수는 있지만 강요당하지는 않기에 최종적으로 각자 자신이 선택할 자유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타인들의 종교생활에 대해 간섭하거나 어느 한 특정 종교를 믿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이것은 심지어 자신의 가정 안에서도 조심해야 할 사항이다. 불교신자 집안에서 자란 필자의 한 친구는 사십여 년 전 양가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장로의 딸과 혼인하여 지금까지 사랑으로 살고 있지만 여전히 각자의 종교를 신봉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드물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종교에 관한한 각자의 태도를 존중할 필요가 있고 우리 대다수가 그렇게 하고 있다. 종교가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각자 살아가고 있고 이 문제로 다투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있다고 하더라도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세기까지는 각 종교들이 비교적 활발한 선교활동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 종교를 믿는 사람의 수를 증가시켰다. 그러나 일반인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온갖 정보와 지식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통신시대에 들어서는 종교집회 장소와 교리 그리고 종교의식을 알리는 선교행위로는 그 효과가 크지 않은 것을 확인하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웃을 개종시키려는 의도로 다가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셨는데, 이는 단순히 시대의 경향을 파악하시고 하신 말씀이라기보다는 종교의 자유와 종교간 대화에 대한 깊은 생각을 바탕에 두고 하신 말씀인 것 같다. 교황님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믿는 신앙에 충실할 것을 권하셨다. 자신이 믿는 신앙에 충실할 때 따르는 안정감과 평화, 번영과 사랑으로 주변 이웃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종교 시설, 종교방송, 서적, 집회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 알려주는 각종 이론과 의식을 많이 보고, 듣고, 읽고, 고찰하며 살고 있다. 그렇기에 올바른 진리는 어느 특정 종교 단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있고 또 그 안에 부족한 점들과 때로는 오류들도 있어서 매우 조심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신중하지 않으면 속임을 당해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 참된 진리에 대한 갈증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냥 살기만 하는 식물이나 일반 동물이 아니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삶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초월을 추구하는 것도 막을 수 없는 것 같다.
신부, 천주교대구대교구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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