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 접종을 못 받은 아이들이 있어요. 보건소에서 갑자기 안 된다고 했대요."
이주노동자센터에서 연락을 받은 건 지난해 6월이었다. 보건소 인력이 코로나19 방역에 투입되면서 미등록 이주 아동을 대상으로 시행되던 예방접종이 중단된 것이다.
부모가 미등록 체류 상태면 태어난 아이는 출생 신고도 할 수 없고, 체류 자격도 얻을 수 없다. 이런 아이들을 우리 사회는 미등록 이주 아동이라 부른다. 약 2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이들은 '존재의 합법성'을 상실한 채 '투명 인간'처럼 커간다. 유엔아동권리협약 덕분에 학교는 다닐 수 있지만, 핸드폰 개통도 불가능하고, 여행자 보험에 들 수 없어 수학여행도 갈 수 없다.
몸이 아파도 참아야 한다.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미등록 이주 아동 보건복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 아동 부모 중 약 32%가 '진료비 부담' 때문에 자녀가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한다고 했다.
정부는 2005년부터 '소외계층 의료비 지원 사업'을 통해 미등록 이주 아동의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을 지원해왔다. 보건소에서 임시 번호를 받으면 예방접종이 가능하다. 어렵게 살아가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코로나19로 홍역·결핵 등 필수접종마저 중단된 것이다. 실제로 2019년 대구에서 2천547명의 미등록 이주 아동이 접종을 받았지만, 지난해에는 464명으로 크게 줄었다.
무료 진료소에서 만난 두 아이를 키우는 베트남 출신 엄마는 "개인병원에 가서 접종받으래요. 그런데 주사비가 너무 비싸요. 코로나로 일도 못 나가고 있는데…"라고 하소연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하루하루의 생존이 걱정인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접종 비용은 큰 부담이었다. 최전선에서 고생한 보건소의 사정도 이해는 되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큰 어려움에 빠진 우리 사회 취약 계층에 대한 따듯한 배려가 아쉬웠다.
"아빠, 세상에 불법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내가 태어나면 합법 사람입니까 불법 사람입니까, 물어보고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이란주의 소설 '로지나 노 지나'에서 방글라데시 출신 미등록 이주 아동 로지나가 한 말처럼 부모의 신분은 아이의 선택이 아니다. 부모의 체류 신분에 관계없이 자녀가 건강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이유다. '아동은 부모의 사회적 신분, 인종 등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아야 한다' 아동복지법 4조에 명시된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뜻있는 몇몇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의 도움으로 약 130여 명의 미등록 이주 아동이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었다. 최근 일부 보건소에서 접종을 다시 시작해 다행이지만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미등록 이주 아동도 내국인처럼 가까운 병·의원에서 무료로 필수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 작가 은유는 미등록 이주 아동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등록 이주 아동이 우리 사회에서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아니라 '있으면서 존중받는 아이들'로 건강하게 커갈 수 있을 때 진정한 '인권 국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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