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아프간은 멀지 않다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다시 권력을 잡으면서 인권 유린이 벌어지고 있다. 부르카를 입지 않고 거리에 나선 여성이 탈레반에 총살당했다. 아프간을 떠나려고 공항으로 향하던 여성과 아이들이 탈레반의 채찍질에 쓰러졌다. 탈레반이 아프간 국기를 든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쏴 3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아프간 점령 후 탈레반은 기자회견을 통해 "여성 차별이 없을 것이다"고 밝혔다.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정부'를 수립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거짓말로 드러나고 있다.

종교나 이념 전쟁은 영토를 점령하고 재산을 빼앗는 차원을 넘어 인적 청산을 수반한다. 자신의 이념에서 벗어나기도 힘들지만 타인에게 나의 이념을 주입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전쟁보다 훨씬 잔혹하다.

맹신과 잔혹한 폭력은 탈레반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디나 편재한다.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 때 공산주의자들이 민간인과 경찰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6·25 때 공산 점령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인민재판'을 받아 죽었다.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맺고, 미군이 철수하면 한반도에 평화가 올까? 그 답은 '아프간 평화협정과 미군 철수'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의 이치는 지문(指紋)과 같아서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아프간이나 6·25 때와는 다르다는 주장은 거짓이거나 심리적 도피일 뿐이다. 북한도 남한을 죽이고, 남한도 북한을 죽인다. 그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의 결과물이다.

혹자는 북한은 한국을 침공할 능력이 없다고 한다. 현재 경제력과 무력의 차이만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다. 아프간도 그랬다. 미군의 원조를 받는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보다 훨씬 강했다. 그러나 미군이 철수하자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미군이 남긴 그 많은 무기는 무용지물이었다.

국가 경제력과 무력은 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근거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고정 간첩들이 내부에서 끊임없이 미군 철수 여론을 조성하고, 군대가 갖은 이유로 훈련을 피하고, 정치가들과 국민들이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한국도 얼마든지 침공받을 수 있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국가가 오히려 전쟁에 쉽게 휘말리지 않는다.

조두진 논설위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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