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 10味 이야기] 몸을 지키는 호화로운 한상…'해신탕'

육·해·공의 진미를 뽐내는 맛의 다툼…낚지 vs 문어 논쟁에 랍스터까지 참전

포항시 북구 죽도동 '해물시티'의 해신탕. 각종 해물 위에 올려진 랍스터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신동우 기자
포항시 북구 죽도동 '해물시티'의 해신탕. 각종 해물 위에 올려진 랍스터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신동우 기자

해신탕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분명 우유부단했을 것이다. 동시에 맛에서 만큼은 천재가 틀림없다. 어릴 적 동네에서는 해신탕을 '잡탕'이라고 불렀다. 물론 맛이 잡스럽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저것 떠오를 만한 것은 몽땅 집어 넣었다고 해서 잡탕이다.

어느 집에서는 곤이며 명란을 넣기도 했고, 또 다른 집에서는 다시마처럼 해초를 넣기도 했다. 메추리알을 껍질 채 넣어 끓여 내는 집도 본 적이 있다. 해신탕은 왕도가 없다.

◆닭이냐 오리냐 그것이 문제

닭을 넣는 곳이 가장 많지만, 요즘에는 건강 부분을 더욱 부각시켜 오리를 넣는 곳도 늘었다. 간혹 꿩처럼 아예 결이 다른 것을 넣는 곳도 있지만, 찾기 쉽지 않다.

꼭 조류가 들어가기 때문에 해신탕은 해천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다 해(海)에 하늘 천(天)을 쓴다. 풍부한 바다 해물에 날개 달린 조류를 넣으니 '바다와 하늘이 만난다'는 뜻을 그대로 직역한 작명 센스다.

해신탕이라는 이름의 유래 역시 두 가지 설로 나뉜다. 가운데 '신'이라는 글자를 귀신 신(神)을 쓰는지, 아니면 몸 신(身)을 쓰는지 하는 이야기이다. 전자는 '바다의 용왕이 즐겨 먹은 보양식'이라는 거창한 이유가 붙어 있다. 물론 후자는 몸에 기운을 더하는 보양식이라는 의미다.

요즘은 드라마와 각종 예능에 소개되며 해신(神)탕이라는 이름이 정설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거창한 이름이라도 이 편이 좀 더 정감 가는 것이 사실이다.

'해물시티' 사장 최영광씨가 그날 새벽 죽도시장에서 공수해온 키조개 등 해산물을 들어 보이며 신선도를 자랑하고 있다. 신동우 기자
'해물시티' 사장 최영광씨가 그날 새벽 죽도시장에서 공수해온 키조개 등 해산물을 들어 보이며 신선도를 자랑하고 있다. 신동우 기자

◆진한 해물향이 포항만의 특색

지금은 해신탕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며 전국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있다. 심지어 바다가 아예 없는 수도권 등 내륙지방에서도 해신탕 집 한두 곳은 으레 있다.

일부러 흠집을 내려는 것은 아니지만, 아쉽게도 대부분 삼계탕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가게가 많다.

해신탕은 명확한 유래가 없다. 음식 관련 고서를 찾아봐도 비슷한 음식은 종종 눈에 띄지만, 해신탕을 명확히 지칭하는 요리법을 찾을 수 없는 탓이다.

약 20년 전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해신탕이라는 이름을 내걸기는 했지만, 이곳이 최초인지는 이견이 분분하다.

물론 옛날부터 조류에 해물을 넣은 요리가 없을 리가 없다. 특히 바다에 인접한 지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전복삼계탕 등 비슷한 요리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일 터다.

해신탕이라는 이름에 분명 바다 해(海)를 먼저 앞세운 까닭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기의 맛보다는 바다의 향을 강조한 뜻이라 추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포항의 해신탕은 주체성이 확실하다. 최소한 해물을 전체 재료의 7할이 넘도록 그득 채우는 것이 포항의 특색이다.

소라와 고동, 각종 조개, 새우 등을 배부르도록 골라 먹고 나서야 밑바닥에서 닭이나 오리 등이 나온다.

재료의 익는 속도가 다르니 오래 끓이면 질겨지는 해물을 먼저 먹고, 푹 익힉 닭 등을 먹으면 좋다.

경북 최대 재래시장인 포항 죽도시장에서 새벽 5시쯤 그날 잡아 올린 문어의 위판이 진행되고 있다. 신동우 기자
경북 최대 재래시장인 포항 죽도시장에서 새벽 5시쯤 그날 잡아 올린 문어의 위판이 진행되고 있다. 신동우 기자

◆문어와 낙지, 랍스터까지 해신탕의 화려한 변신

들어가는 해물은 가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비쥬얼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꼭대기에 올라서는 문어 혹은 낙지이다.

둘 다 장단점이 분명하니 굳이 어느 것이 낫다고 싸울 이유가 없다. 문어는 달큰한 맛을 국물에 더해주고, 낙지는 해물 만으로 부족한 단백질 등 영양소를 보충해준다.

그런데 요즘에는 문어와 낙지 대신 랍스터나 대게까지 올려주는 집이 생기면서 뜻하지 않게 골머리를 아프게 한다. 모두 바다를 끼고 있는 포항만의 행복한 고민일 게다.

포항시 북구 죽도동의 '해물시티' 사장 최영광(54)씨는 "매일 새벽 인근 죽도시장에서 직접 공수한 살아 있는 해물을 요리 직전 손질한다. 경북 최대의 시장을 가지고 있는 강점"이라면서 "포항까지 왔는데 해물을 양껏 먹고 가는 게 손님 대접 아니겠냐"고 너스레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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