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득 동네책방] <35> 경주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핫플레이스서 누리는 책 한 권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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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리단길의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내부. 김태진 기자

경주 황남동의 황리단길은 유동인구가 상상을 초월한다. 가게를 들락날락하는 게 미션인 듯 관광객들이 잠시 들렀다 나가는 게 어색하지 않다. 오래 머물면 밀려드는 인파에 익사할 것만 같다. 정말이지 황리단길은 구역 전체가 '핫플레이스'라는 말에 적확한 곳이다.

대릉원 돌담길 옆에 '그림책서점 소소밀밀'이 있다. 동양화에 조예가 있다면 친숙한 표현, 소소밀밀. 여백이 있는 곳에는 더욱 여백을 주고(疏疏), 밀도를 높여야 하는 곳은 더욱 빽빽하게 그려내는(密密) 동양화 기법이다. 소소하고 밀밀한 삶을 지향한다는 그림책 작가 구서보 씨와 출판편집자 김지혜 씨 부부가 운영하는 책방은 2017년 6월부터 이곳에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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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리단길의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내부. 김태진 기자

이곳을 찾은 날은 평일(목요일)이었음에도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어쩌다 한 명씩 들르는 손님에 깜짝깜짝 놀라는 대구시내 동네책방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책방지기 김지혜 씨는 "여행지다 보니 잠시 들렀다 나가는 손님이 많다. 평일이라 덜 북적이는 편이다. 주말이면 더 하다. 여행지 책방의 숙명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런 만큼 같은 열람용 책을 따로 두는 건 당연했다. 여러 사람의 손을 타면 판매용 책으로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림책서점이다 보니 대체로 그림 위주로 책을 선별한다고 했다. 또 몇몇 책을 제외하고는 같은 자리에 오래 두지 않고 되도록 자주 순환하려고 노력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런데 산문집이 더러 보인다.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이 눈길을 잡는다. 강원도에 있는 1인 출판사 '온다프레스'에서 출간한 책이다. 김 씨는 "지역에서 열심히 책을 만드는 이들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 옆에는 강석경 작가의 '이 고도를 사랑한다'도 놓였다. 책방지기 부부와 대화를 나누러 가끔 오는 좋은 이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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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리단길의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김태진 기자

그림책 작가로, 출판편집자로 서울에서 일했던 부부는 작업실을 겸할 목적으로 경주 황성동에서 책방을 열었다고 했다. 그림책방업계에서는 초창기 멤버에 해당될 만큼 이른 시기였다. "사흘에 한 명씩 손님이 올 정도로 여유가 있을 거"라며 추천한 지인의 말을 실행으로 옮긴 것이었다. 그렇게 경주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부부는 지난해 '경주그림산책 소소하고 밀밀하게'라는 그림에세이를 펴내기도 했다.

구서보 씨의 그림은 책방 어디서든 보인다. 그가 직접 그린 그림이 엽서 형태로, 혹은 액자 형태로 전시돼 있다. 음료는 팔지 않는다. 오롯이 책 판매만으로 운영되는 책방이다. 자유롭게 책과 그림을 볼 수 있다. 다만 책에 집중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실어 '실내 촬영 금지'를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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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리단길의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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