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과 클라라의 이야기를 꺼내자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브람스의 이야기이다. 클라라가 슈만을 사랑했다면, 브람스는 클라라를 사랑했다.
브람스가 클라라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나이 20세 때인 1853년. 당시 무명의 피아니스트였던 브람스는 슈만의 집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슈만의 집에 머물던 브람스는 당시 14살 연상이었던 클라라의 미모와 재능에 반한다. 존경심에서 비롯된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마음은 어느새 사랑으로 훌쩍 자라버렸다.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자주 편지를 썼다. 첫 편지에서의 호칭은 '경애하는 부인'이었다. 그 뒤로는 '나의 클라라에게', '당신'으로 변해갔다. 브람스는 편지에서 사랑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라라는 브람스에게 자신은 슈만의 아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오직 '우정'만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브람스 역시 클라라와 사랑을 키우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스승인 슈만의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의 죄악'을 짓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슈만이 1853년 라인 강에 투신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브람스는 한 걸음에 달려간다. 브람스는 가족의 일원인 듯 슈만 가족을 성심성의껏 돌보았다. 그 후로도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은 계속됐다.
거기까지였다. 브람스와 클라라는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켰다. 서로를 위로하고 도우면서 각자 예술가로서의 창작에 몰두했다. 불타는 사랑을 예술적 영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클라라를 처음 만난 20살부터 64살로 타계하기까지 늘 브람스의 마음속에 있었던 존재는 클라라였다. 브람스는 클라라를 향한 연모의 열정을 모두 음악 창작에 쏟았던 것이다.
브람스와 클라라는 슈만 사후 40년 동안 늘 남들의 의심어린 눈길을 받았지만 연인 관계를 공식화한 적은 없었다. 1896년 클라라가 타계했을 때 브람스는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평생 해바라기같이 한 여인을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한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클라라 사망 이듬해인 1897년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브람스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그의 음악이 왜 비 오는 날이나 늦가을에 감상하기에 알맞은지, 왜 그토록 애절하고 우울한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브람스 음악을 들을 때 클라라를 떠올려보면 더 이해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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