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배신 프레임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코카콜라 직원이 업무 시간에 펩시콜라를 마시면 배신(背信)일까. 2003년 코카콜라사는 회사 유니폼을 입은 채로 펩시콜라를 사서 마신 자사 배달차량 기사를 해고했다. '펩시콜라를 몰래 꺼내 마시려는 코카콜라 운전기사'라는 펩시 TV 광고가 히트를 친 마당에 광고와 같은 상황이 현실로 나타났으니 코카콜라 경영진으로서는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해고 기사는 할당된 업무를 마치고 펩시콜라 한 캔을 마신 것은 개인의 선택권이라고 항변했다. 노조도 회사를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여론 악화에 몰린 코카콜라사는 해고 기사를 재고용하는 선에서 사태를 봉합했다. 이 해프닝은 미국에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신자는 미움의 대상이다. 서구 문명권에서 수천 년간 배신의 대명사로 인식돼 온 이스카리옷 유다와 마르쿠스 브루투스를 보라.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배신자에 부정적 감정을 갖는다. 유대 관계에 있는 타인과 조직의 뒤통수를 치는 행동은 공동체 안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배신에 대한 혐오는 진화론적으로 당연한 심리 기제다.

정치계에서도 '배신자'는 치명적 낙인이다. 도의 명분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배신자 프레임'은 곧잘 먹힌다. 최근 홍준표 국회의원(국민의힘)이 배신자 프레임을 들고나왔다. "내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는 배신자다. 한 번 배신해 본 사람은 또 배신한다"고 했다. 그가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배신'의 사전적 정의는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림'인데 경계가 애매할 때가 있다. 이성계의 역성혁명도 고려 왕조 입장에서는 배신이다. 내부 고발의 경우 해당 조직 시선으로는 배신이겠지만 사회 공익으로는 분명 정의다. 그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은 조직을 등진 사유의 정당성 및 사리사욕 추구 여부다.

이대로는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반대 정치 진영에 들어간 것을 배신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사안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판정단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주권자이자 심판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배신자 프레임이 얼마나 힘을 발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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