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무덤'에 새로운 변수가 나타났다. 어쩌면 탈레반보다 더 무시무시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8월 26일 오후 6시쯤, 카불의 국제공항 남동쪽 게이트에서 거대한 폭발이 발생했다. 거의 동시에 인근 배런 호텔에서도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사망한 사람만 170명이 넘고 이 가운데는 미군 13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 공격을 감행했다고 밝힌 조직은 IS-K, 이슬람국가 호라산 지부였다. '호라산'은 중세 페르시아 말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현재의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그러니까 아프가니스탄을 근거로 '이슬람 신정국가(칼리페이트·caliphate)'를 세우고자 하는 '이슬람국가 호라산 지부'가 미국과 서방에 협력해 오던 아프간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테러에 나선 것이다.
이라크전쟁 이후 세력을 확장하던 이슬람국가는 한때 시리아의 락까를 '수도'로 하며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까지 함락시키는 '위용'을 보였다. 그러나 러시아와 미국 등이 시리아에 신정국가가 들어서는 최악의 상황보다 바샤르 아사드 정권을 유지시키는 차악을 선택하면서 이슬람국가의 영향력은 시리아에서 크게 약화되었다. 바로 그 이슬람국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탈레반보다 더욱 잔인하고 더 확장력을 가진 종교적 테러 조직이 아프가니스탄을 '접수'한다면 아프간 국경을 넘어서는 전 세계적 테러 본부가 차려지게 된다. 탈레반이 부족적 관습과 이슬람 교리를 이용한 정치 집단이라면 이슬람국가는 국경을 초월한 이슬람 신정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정치·종교적 테러 조직이기 때문이다. 시리아와 이라크 내전에서 IS는 'Men(인력), Money(돈), Munition(무기)' 등 3M으로 무장하고 급속히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IS는 몇 가지 점에서 탈레반보다 더 위험하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국가 영토 내부에서 권력을 잡고자 하는 정치 집단이다. 친미적 정부를 무너뜨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정권을 잡는 것이 탈레반의 목표라면, IS는 정치와 종교가 일치하는 신정국가 설립이 목표다. 이 신정국가는 현재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국경을 넘어선다. IS 조직원 가운데 상당수가 다국적군이란 점도 이 때문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IS-K의 경우도 다수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이라크, 시리아 등에서 온 외국인 전사로 알려져 있다.
IS가 무서운 것은 이들의 삶 전체가 이슬람이라는 교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믿는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대다수 건전한 모슬렘이 믿는 종교와는 많이 다르다. 모하메드가 생존했던 6~7세기 당시의 이슬람 교리에 근거해 엄격한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그대로 통치에 적용한다. 도둑질을 하면 손목을 자르고, 불륜을 저지른 여성은 돌로 쳐서 죽이는 극형을 실시하는 등 전근대적 종교법을 그대로 시행하는 것은 탈레반과 일치한다. 그러나 IS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교도(이슬람을 신봉하지 않는 모든 나라)들에 대해 성전(지하드)을 선포하고 중동 국가에 군대를 파견한 나라들과 전쟁을 벌이려 한다. 신의 이름으로 싸우다 죽으면 천국으로 직행하며 이 천국에서는 8만 명의 하인과 72명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의 시중을 받게 된다고 전사들은 믿고 있다. 척박한 땅에 태어나 대여섯 살 때부터 코란을 암송하고 이교도를 처단하는 무기 사용법을 배우며 자란 '전사'들은 자살 폭탄 띠를 두르고 미군과 서방의 '적'들을 살해하면 곧바로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들에게 죽음은 하느님 곁으로 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성들에게 부르카로 전신을 두르게 하고 교육을 금하는 전근대적인 탈레반조차도 두려워하는 이슬람국가, 이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접수한다면 어떻게 될까? 2001년 아프가니스탄은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은신해 주었다는 이유로 미국의 공격을 받아 20년 전쟁에 들어갔다. 그보다 더 강하고 더 근본주의적인 IS-K가 아프가니스탄에 신정국가를 만든다면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군이 떠난 이후의 아프가니스탄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현장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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