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술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원대한 목표로, 혹은 기술을 사업화해 큰돈을 벌겠다는 포부로 시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선한 마음에서 개발한 기술이 누군가의 삶을 크게 바꿔 주기도 한다. 옛말에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 했다. 인간의 오감 중 시각의 정보 수용량이 83%를 차지할 만큼 눈은 우리 신체에서 중요한 기관임을 반영한다. 한편, 신체장애로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이들에게,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신체 기관인 눈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는 시각장애인에게는 세상을 볼 수 있는 범위를 넓혀주고, 지체장애인에게는 눈이 신체 기능을 대신하도록 돕는 착한 기술들이 있다.
전 세계에는 2억4천만 명에 달하는 시각장애인이 있다. 그중 약 80~90%는 잔존 시력이 남아 있어 빛이나 일부 형체를 판별할 수 있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이지만, 오랫동안 그들의 생활을 도왔던 건 오로지 지팡이와 안내견뿐이었다. 그러던 지난 2017년, 삼성전자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에서는 저시력 장애인의 시각 보조를 위한 솔루션 '릴루미노'를 개발했다. 릴루미노는 시야가 뿌옇고 빛 번짐이 있거나 굴절 장애 등을 겪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VR 기기, 글라스 등을 착용하면 이미지 확대 및 축소, 윤곽선 강조, 색상 대비, 밝기 조정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해 사물을 보다 뚜렷하게 볼 수 있게 한다.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한빛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현장 테스트에서 릴루미노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뿌옇고, 흐리고, 왜곡된 이미지 속에서 살았던 아이들이 볼 수 없던 것들을 보게 되니 "신기해"라는 말을 연발했다. C랩 우수 과제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MWC)에서도 릴루미노를 찾은 시각장애를 가진 참관객들의 놀라운 반응은 이어졌다. 이후 릴루미노는 배우 한지민이 출연한 단편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의 소재가 돼 시각장애인들이 사물을 뚜렷하게 보게 되는 기쁨을 보여주고, 시각장애인 판단을 받아 좌절한 주인공에게도 희망을 보여주었다. 최근 릴루미노는 식약처 품목 허가를 받고 시중에서 보급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전신마비 장애를 가진 환자들은 일상생활에서 많은 불편을 겪는다. 전신마비 환자들을 돕는 한 봉사 단체가 그런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터뷰한 적이 있다. 결과는 놀랍게도 이동을 위한 교통수단도, 먹거리도 아닌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었다. 이처럼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지체장애인들이 IT 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눈동자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안구 마우스이다. 기존 안구 마우스는 1천만 원이 넘는 고가였지만, 불과 5만 원 이내의 재료비로 이를 구현할 수 있게 한 안구 마우스를 삼성전자 C랩에서 개발했다.
지금의 삼성전자 C랩을 있게 한, C랩의 최초 과제였던 안구 마우스 '아이캔'(EYECAN)은 컴퓨터의 마우스 조작을 손 대신 눈동자로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다. 안구 마우스를 이용하면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사람도 눈동자 움직임만으로 글을 쓰고, 컴퓨터를 제어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꼭 필요한 기술을 혁신적인 가격에 구현이 가능하게 한 아이캔은 미국 텍사스에서 매년 개최되는 'SXSW'에 참가해 현장 참가자들의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일정 수량의 아이캔을 개인과 사회단체에 무료로 보급해왔다. 특히 사회적 기업과 비영리단체들이 안구 마우스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안구를 인식하는 하드웨어 기술과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도 모두 온라인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기술은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쓰일 때 가장 가치 있다. 장애를 가진 이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보다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평등할 권리가 있고, 기술의 발전도 이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사회 공헌이라는 거창한 표현이 아니라도 된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선한 영향력에서 또 다른 착한 기술을 위한 도전들이 연속적으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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