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을 하는 제자한테서 연락이 왔다. 진로상담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부학장 시절엔 거의 매일 성적 내지 진로문제로 면담을 했던 터라 면담 요청이 낯설지 않았다. 코로나 이전, 사적 모임제한이 없던 터라 인턴콜이 없는 점심시간에 보기로 했다.
역시나 제자의 걱정은 진로였다. 본인의 희망 전공과가 자기와 맞을지, 만약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플랜B가 없다며 확신 없는 걱정에 빠져 있었다.
점심을 먹고 시간이 좀 남아 커피 한잔하기로 했다. 제자는 본인이 좋아하는 말차라떼를 시켰고, 나는 앞손님들이 시키기에 '나도 한번?'하는 호기심에 솔트카라멜라떼를 주문했다. 들어본 적도 없고, 도저히 무슨 맛인지 상상이 안 되는 이름이었다. '드셔본 적이 있냐'는 제자의 질문에, 먹어본 적이 없으니 한번 시켜본다고 했다.
드디어 맛보게 된 솔트카라멜라떼는, 달고 짠 커피우유 같았다. 같은 걸 시킨 옆자리의 젊은이들은 '대박'이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제자가 한 모금 맛보고는 "이게 대체 무슨 맛이죠? 교수님 다시 시킬까요?"하며 점심 커피를 망쳤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사실이 그랬다. 오늘 이걸 안 시켰으면 다음번에 시켰을 거고, 오늘 이걸 먹어봤기 때문에, 이건 나와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된 거라고. 그게 오늘 한 경험의 대가이고, 그거면 됐다고.
인생도 그런 것 같다. 현재의 실패 때문에 내 인생이 무너질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덕분에…'라고 위안하게 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나도 지금의 모교에 입학하고, 재활의학과 전공을 하고, 교수로 살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내가 의도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때론 억울하기도 했던 일들이 지금은 '이렇게 되려고 그랬었구나'는 생각이 들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내 인생의 실패들에 오히려 감사한다.
그러고 보면 그 어느 것 하나 온전한 실패는 없었다. 실패라고 생각한 건 세월이 지나고 보니 오히려 나를 성공으로 이끄는 길잡이 같은 거였다.
친구가 추천한 유튜브 동영상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10을 채워야 성공이라고 할 때, 때론 5, 때론 9 밖에 못 채워서 세상은 내게 실패했다고 하지만, 내가 채운 5와 9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 5와 9를 합치면 14라고. 그래서 그 14가 언젠가는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올 거니 오늘의 5와 9에 좌절하지 말라고.
살아보니 우리 인생에 의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때로는 미칠 듯이 힘들고, 때로는 죽을 만큼 억울해도, 결국 세상에 장점만 있거나 단점만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이제는 믿고 살아간다. 적어도 믿으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제자에게도 얘기했다. 네가 원하는 전공을 하게 될 수도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게 너 인생의 결말은 아니라고. 때로는 네가 한 선택이 결국 너 입맛에 맞지 않는 솔트카라멜라떼일 수도 있지만, 그건 그대로의 의미가 있는 거라고. 그러니 너무 걱정 말라고.
근영아! 늘 응원하고 있다!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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