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헐고 짓고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한 쪽은 헐자 하고, 다른 쪽은 짓자 하네!'

대구 달서구와 달성군은 경계가 붙어 있다. 한때 두 지역은 달성군의 한 울타리였다. 그러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달성군의 일부가 오늘날 달서구로 편입되어 갈라졌다. 이런 달성군과 달서구에서 현재 일어나는 두 가지 일의 결과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고 흥미롭다.

먼저 달서구 사례이다. 지난달 20일 달서구의회에서는 과거 달성군 월배면 소속이던 상인동 출신 윤상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해 그가 독립운동을 모의했던 앞산 달비골 별서인 첨운재(송석헌)를 활용하거나 아예 새로운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한 정책 토론회가 처음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그가 1915년 2월 28일(음력 정월 보름) 앞산 안일암에서 몰래 시회(詩會)를 가장해 비밀결사인 조선국권회복단을 만들고 통령을 맡아 파리장서운동을 뒷받침하고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군 자금을 조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친 공로를 되새겨 기리기 위해서였다. 박왕규 구의원이 앞장서 토론 자리를 마련하고 후손을 초청했다. 후손은 달비골 별서를 활용할 경우 사유지 땅 기부를 약속했다. 어쩌면 달서구에 독립운동 관광 자산이 하나 더 들어설지도 모르게 됐다.

다른 모습은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주막촌 부근 화원유원지 안에 있는 1901년 설립된 120년 역사의 낙동정사(洛東精舍)이다. 이곳은 설립 이후 대구 출신 유학자 서찬규가 대구 등 인근 유림을 모아 가르치던 곳이니 제자를 기른 강학 장소였다.

여기서 배운 제자로, 1919년 파리장서에 서명해 서훈받은 사람만 서건수(서찬규 손자)·우하교 등 9명에 이른다. 9명 가운데 우하교는 앞서 윤상태와 함께 조선국권회복단원으로 활약했다. 특히 서찬규 현손인 서상교는 1942년 대구상업학교 비밀결사 태극단의 간부로 활동해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았다.

이 같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낸 낙동정사지만 달성군에서 추진 중인 화원유원지 정비계획으로 언제 헐릴지 모를 운명을 맞고 있다. 100년의 세월을 버틴 유서 깊은 기와 한옥 건물 하나를 허물고 그 자리에 관광숙박시설을 지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같은 대구의 한 지붕 아래 독립운동 자산을 다루는 서로 다른 달성군과 달서구의 두 모습에 뒷날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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