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를 수 없는 나라(크리스토프 바타유 글 /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풍경이 변했다. 숲은 서로 뒤엉킨 칡넝쿨로 꽉 막히고 이상한 나뭇잎에 뒤덮여 있었다. 땅바닥은 질퍽했다. 미지근하고 향기가 퍼지는 물, 보이지 않는 긴 나무뿌리들이 꼬여 있는 물속을 걷고 있었다."(98쪽)
여름 숲을 거닌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처음 보았을 때 그다지 특별한 인상은 받지 못했다. 하얀 표지와 열대 숲의 그림이 삽입되어 있는 다소 평범한 외피. 그럼에도 이 작품을 읽게 된 이유는 날렵한 두께 때문이었다. 더위 때문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던 당시 내 마음도 한몫 거들었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작품은 프랑스 선교사 일행이 베트남에 도착한 후 겪게 되는 신비한 일을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펼친 소설이다. 때마침 8월에 나는 이 책을 붙잡게 되었는데, 소설 속 깊이 배어 있는 여름의 분위기에 곧바로 매료되었다.
"물을 대놓은 평야가 까마득히 펼쳐져 있었고 그 빛나는 초록색은 짙은 푸른색이다 못해 이내 하얗게 변해버리는 하늘과 잘 어울렸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벌써 더위가 짓누르는 듯했고 바람 한 점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나무와 돌로 지은 작은 집들뿐이었는데 지평선 위로 솟은 그 윤곽이 뚜렷했다."(43쪽)
카메라로 찍은 것 같은 문장들을 곱씹고 다시 음미해 보지만,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맛볼 여지가 남아 있는 이상한 매력. 역자인 김화영 씨의 평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짧은 문장들 사이에서 배어나오는 기이한 적요함, 거의 희열에 가까울 만큼 해맑은 슬픔의 위력."
선교사 일행은 열대 숲의 더 깊은 곳으로 향한다. 그들은 점점 문명과 멀어지고 종교적 사명감 또한 엷어진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끝없는 고요와 평화.
"대자연은 개시만 할 뿐 절대로 마무리 하는 법이 없는 몸짓으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바람이 존재들을 스치면서 그 감각을 드러내 보였다. 모든 것이 속을 드러냈다. 그 속에 숨어 있던 정령들이 깨어 일어났다. 생명이 가까이 있었다. 밤이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134쪽)
선교사들은 하나둘 주어진 목숨이 다해 스러져 간다. 어떤 이는 전염병에 걸리고 어떤 이는 나이 들어 홀로 세상을 떠난다. 그들은 결국 세상 사람들로부터 잊힌다. 정말로 이상한 것은 그들의 고독한 죽음과 망각이 가슴 아프지 않았다는 점. 오히려 그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지는 자연스런 삶의 한 과정이지 않을까 담담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름밤의 수런거림과 미지근한 공기 그리고 대지를 적시는 비를 문장으로 음미하고픈 분들에게 나는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추천한다. 다른 곳에는 없는 고요한 여름의 매력을 유감없이 맛볼 수 있으리라. 계절을 표현하는 문장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 책은 여름의 문장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정종윤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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