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5일 카불이 탈레반의 손에 들어갔고,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은 다시 신정국가가 되었다. 아프간 전쟁은 카불 공항의 두 장면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탈출하는 수송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가 떨어진 아프간인들, 그리고 전날까지 결사항전을 외치다가 황급히 도망간 가니 대통령의 모습이다.
2001년 10월 부시 대통령은 전 국민의 지지 속에 9·11 의 기획자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인 아프간으로 진격했다. 탈레반을 카불에서 몰아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저항은 집요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초기 미군을 증원하다가 2014년 12월 공식적으로 종전을 선언하고, 국방과 치안의 1차 임무를 아프간에 넘겼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탈레반과 종전 협상을 벌여 2021년 5월까지 완전철수하기로 했다. 오바마 시절 홀로 증군에 반대했던 바이든은 트럼프의 다른 정책은 모두 싫어했지만 위 종전 협상만은 지지했다. 그는 아프간 전의 목적은 대 테러작전이지 국가 건설이 아니므로 8월 말까지 철수하겠다고 공표했다.
적어도 수개월 간은 카불이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던 미 정보당국의 장담과는 달리 미국은 베트남에 이어 다시 치욕스런 장면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20년간 연인원 80만 명이 참전해서 2천300여 명이 사망했고, 군사비만 8천157억불을 지출했지만, 탈레반 공세 후 무너지기까지 불과 1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1975년 사이공의 함락으로 끝난 베트남전은 시사점을 준다. 케네디 대통령은 탁월한 통계 및 정보 분석 능력을 갖춘 로버트 맥나마라 포드사 회장을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베트남전이 맥나마라의 전쟁으로 불릴 정도로 그는 1960년대 베트남전을 앞장서 이끌었다. 그는 각종 군사적, 비군사적 요인들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분석한 후 미국의 승리를 자신했지만, 베트남의 특수한 지리적, 문화적 요인, 군대와 국민의 사기를 고려하지 않았던 치명적 실수를 범했다.
아프간에서도 미국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미군은 안전지대에 머물면서 아프간인들과 접촉에 나서지 않았고 만날 때도 눈맞춤을 중시하는 그들의 문화를 무시하고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20년간 전혀 아프간인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고, 많은 이들이 미군과 탈레반 중 차라리 탈레반이 낫다고 생각했다. 정규군이 30만 명을 넘고 미국으로부터 최첨단 무기와 화력의 지원을 받는 아프간 군은 구식 무기의 약 8만 명의 탈레반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규군 지원자 90% 이상이 문맹이었고, 그들에게 군인으로서 사명감은 고사하고 기본적 규율을 가르치기도 어려웠다. 군 간부는 각종 이권에 손을 대고 사망한 병사 급여를 계속 수령하는 등 총체적인 부정에 빠졌다. 탈레반 사이에 "미국은 시계가 있지만 우리는 시간이 있다"는 말이 유행했다. 그들은 국민들에게 "미군은 언젠가 떠나지만 우리는 남아있다"는 것을 계속 주지시키면서 상황이 불리하면 파키스탄 산악지대로 피해 시간을 끌었다. 반면 미국은 시간에 쫓겨 외적인 실적을 위해 허수아비 군대 양성에 주력했다. 미국의 돈으로 배를 불린 지휘관들은 이번에는 탈레반으로부터 돈을 받고 총 한 발 쏘지 않고 그들을 통과시켰다. 이런 군에 무슨 사기가 있겠으며 국민들이 어떻게 정부를 믿을 수 있겠는가? 공자가 국가 경영에 필수적 세 가지, 즉 풍부한 식량(족식), 풍족한 군사(족병), 백성의 신뢰(민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민신이라고 했던 구절이 떠오른다.
카불 함락 이후 바이든은 "곧 승리한다고 더 이상 국민을 속일 수 없었다. 다음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물려줄 수는 없었다"면서 자신의 철군 결정이 정당했다고 강변했다. 시간이 지나면 미국인들이 그의 선택을 지지하게 되겠지만, 국제관계에서 신의를 강조했던 그가 미군에 협조했던 통역사 등의 철수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다. 미국이 같은 실수를 세 번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미국은 스스로 싸울 의지와 이길 능력이 없는 나라에 대규모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아프간의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