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는 그간 드라마에서는 금기에 가까웠다. 그간 드라마의 주 시청층은 여성이라는 공공연한 믿음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군대 소재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는 어떻게 신드롬에 가까운 열광을 만든 걸까. 무엇이 이런 반응을 만들어낸 걸까.
◆모두가 반대했던 'D.P.'의 드라마틱한 성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지난 8월말 서비스된 'D.P.'는 탈영병 잡는 육군 헌병대 군무이탈체포조(D.P.)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다. 김보통 웹툰 작가의 'D.P.-개의 날'이 원작이다. 2015년 이 웹툰이 소개되었을 때, 워낙 드라마틱한 이야기라 일부 드라마 제작자들이 리메이크를 제안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 누구도 'D.P.'의 드라마화에 손을 들어준 이는 없었다. 당연하게도 당시 드라마들은 주 시청층인 여성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여성들에게 '군대 이야기'만큼 재미없는 이야기는 없다는 말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군대를 다룬 'D.P.' 같은 이야기는 매력은커녕 피해야할 금기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현재, 'D.P.'에 쏟아지는 열광적인 반응들은 그래서 놀랍기까지 하다. 이런 작품이 제작되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 반응들이 남성들만이 아니라, 군 경험이 없는 여성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해외에서도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물론 가장 큰 반응은 남성 시청자들에게서 나온다.

자신들이 겪었던 것과 너무 똑같고 리얼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라는 것. 하지만 여성 시청자들도 군대의 부조리한 폭력에 적잖은 공감을 보인다.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가해자에게 분노하며, 우리 모두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던(혹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방관자였다는 사실에 고개를 숙인다.
즉 여성들에게 '군대 이야기'가 재미없게 느껴진 건, '무용담'으로 포장되던 '저들만의 이야기'에 대한 염증이었을 뿐이었다. 'D.P.'처럼 우리 모두가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하는 공감 가는 이야기라면 충분히 귀 기울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
실제로 'D.P.'의 이야기는 시리즈가 공개된 후 현실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D.P. 출신이라는 개그맨 윤형빈은 이 드라마가 현실과 똑같다는 반응을 내놨고, 칼럼니스트 허지웅은 자신 또한 군대 내 가혹행위의 피해자임을 밝혔다. 'D.P.'에 대한 반응이 커지자,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례적으로 이 드라마를 본 후 "군 야만의 역사를 끝내는 것이 MZ 정책"이라는 소감을 남겼고, 드라마의 적나라한 내용이 다소 불편할 수 있는 국방부는 "병영 환경이 바뀌고 있다"고 공식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D.P.'를 넷플릭스가 선뜻 제작한 이유
사실 'D.P.'가 드라마로 제작돼 나올 수 있었던 건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지상파 개념으로 '드라마는 여성 시청자 타깃'이라는 금과옥조가 있어 제작이 기피됐던 'D.P.'는, 넷플릭스에서는 로컬 색깔이 분명하면서도 글로벌하게 통용될 수 있는 콘텐츠로 주목받았다.
즉 전 세계에 군대 이야기들은 넘쳐나지만 분단 상황에서 의무화되어 있는 특수 조건의 한국 군대 이야기는 넷플릭스 입장에서 특별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로컬 색깔이 확실히 드러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D.P.'는 군대 이야기면서도 누구나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액션물, 수사물 같은 장르적 틀을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니 '로컬 콘텐츠의 글로벌화'를 모토로 삼는 넷플릭스에는 최적화된 콘텐츠가 아닐 수 없다.
또한 'D.P.'는 군대이야기지만 이야기는 군대 안보다 바깥에서 더 많이 벌어진다. 이게 가능해진 건 군대 중에서도 헌병대 군무이탈체포조라는, 다소 이색적으로 보일 수 있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어서다. 이들은 탈영병을 잡기 위해 수시로 군 바깥을 나서고, 일반인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도 기르며 군복도 입지 않는다.

그러니 자칫 군대 안의 이야기로만 국한되었을 때 느껴질 수 있는 괴리감이나 거리감을 이 소재 자체가 간단하게 뛰어넘는다. 준호(정해인)와 상급자인 호열(구교환)이 탈영병들을 잡기 위해 군 바깥에서 활동하는 모습은 마치 버디무비 장르 같기도 하고, 수사물, 형사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탈영병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가를 점점 알아가는 준호와 호열의 시선을 통해 드라마는 사회비판적인 색채까지 더할 수 있게 됐다.
군대를 다루지만 훨씬 확장된 개념으로 이를 끌어안는 자세는 결국 군대에서의 폭력과 부조리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폭력들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가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즉 군대에서 덕후라는 이유로,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심지어 얼굴이 재수 없다는 이유로 폭력을 당하는 후임병들의 처지는, 그들이 사회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이유 없이 상사에게 갑질을 당하는 상황들과 병치된다.
드라마 속에서 청춘들은 가정폭력 때문에 집으로부터 탈출하고, 사회의 갑질로부터 도망치지만, 그렇게 도망치듯 들어간 군대에서도 폭력 때문에 탈영한다. 군대에서의 폭력을 사회 어디나 존재하는 폭력으로 바라보는 이 확장된 시선은 작가의 통찰이 엿보이는 대목이면서 이 군대 이야기가 어째서 폭넓은 공감대를 만들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달라진 플랫폼 환경, 콘텐츠도 달라져야
'D.P.'의 성공은 지금의 달라진 플랫폼 환경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과거 군대 이야기는 안 된다는 금기가 생겼던 건, '지상파 개념'의 플랫폼 시대의 이야기라는 것. 당시에는 편성 시간에 맞춰 보는 본방이 중요했고, 시청률이 성패의 잣대였다. 하지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시대가 열린 지금, 본방은 의미가 없어졌고 마찬가지로 시청률은 절대적인 잣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
OTT 시대에 중요해진 건 특정 취향을 제대로 건드려 능동적으로 선택될 수 있는 콘텐츠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D.P.'는 그런 점에서 군대 이야기처럼 확실한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와 '찐팬'들을 먼저 만들었고, 거기서 확장되어 더 많은 주변 팬들까지 끌어들인 콘텐츠가 됐다.
'D.P.'의 성공 사례는 지난해 넷플릭스가 거뒀던 '인간수업'의 성공 사례와 유사한 점이 있다. 즉 지상파에서는 과거 플랫폼 시절의 금기에 머물러 다루지 못했던 소재들을 과감히 가져와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인간수업'은 청소년 성매매라는 파격적이지만, 어찌 보면 현실에 와 닿은 문제를 과감하게 다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이었다.

지상파나 케이블들도 이미 자신들의 콘텐츠를 얹을 수 있는 OTT가 존재한다. 지상파 3사의 콘텐츠를 탑재하는 웨이브가 있고, CJ ENM이 독자적으로 세운 티빙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OTT들이 있어도 여전히 지상파 중심의 사고 방식이 드라마 제작에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를 뛰어넘지 못하면 향후 OTT들의 미래는 자칫 지상파 시절의 금기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지 않을까.
시장이 바뀌면 콘텐츠도 바뀌어야 한다. 이미 OTT가 열어 놓은 글로벌 시장 속에서 'D.P.' 같은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큰 건 그래서다. 과거 지상파 시절의 금기는 그간 열어보지 않은 가능성으로 볼 필요가 생겼다. 그래야 변화된 환경 속에서 우리네 콘텐츠들이 생존해나갈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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