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글지글-지면으로 익히는 글쓰기] 시(詩)- (5)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누구나 시인입니다. 잠재된 그런 감성을 깨우려면 첫째, 틈틈이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해요. 일상 접하는 사물이나 대상을 세심히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생활태도가 필요해요. 어떤 시상이 와 닿을 땐 언제 어디서나 메모를 하지요. 구체적 사실 없이 생각에만 의존하면 추상적인 시가 돼버려요. 그리고 언어의 전이와 공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시상의 폭을 넓히는 것도 참 중요해요.

둘째, 좋은 시를 많이 읽고, 그 시를 베껴봅니다. 내가 쓴다는 느낌 들지요. 그 시인의 상상력과 감수성, 낯설게 하거나 비트는 기법 등을 익히는데 도움이 돼요. 이를 통해 시인은 감각이나 현상 너머의 이면적 진실을 포착하고, 나아가 자기만의 시작법을 터득하게 되지요. 이 모두가 부단히 길들여야 하는 시인의 몫입니다.

셋째, 왜 나는 시를 쓰는가를 골똘히 생각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여기, 지금,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방편의 일환으로 시 쓰기를 해요. 모든 사물과 대상을 나로 인식함으로써 이 세상 존재하는 것들은 다 나 아닌 게 없지요. 나의 시편 기저엔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어요. 시상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땐 나를 데리고 산이나 공원에 가서 종종 걷습니다. 그렇게 받아 적은 시 한 편 볼까요.

섣달 그믐밤 연탄 한 장 피워놓고 /골방에 누워 감 홍시 하나 물컹 삼켰더니 /고놈의 씨가 목구멍에 걸려 /넘기지도 토하지도 못하고 /밤새 끙끙거리다 시가 되어버렸다 /것도 모르고 날로 꼴깍 삼킨 시 /명치에 딱 걸려 오도 가도 못하고 /고놈의 시를 살려봐야겠다고 /용을 쓰고 있는데 /새벽녘 안도현 씨가 씨익 웃으며 찾아와 /감이 익으면 /삼킬 것도 토할 것도 없이 /다 시가 된다고 그러지 뭔가 /씨가 시가 되는 건 감이라고 /죽은 시를 살리는 것도 감 /날로 삼킨 시를 푹 삭히는 것도 감 /뭣이 죽은 듯 살아 있는 감이라고 /설날 아침 /제상 맨 앞줄 터줏대감처럼 앉아 절 받는 감 /씨가 그랬다 /너의 고조모는 성주 이씨, 증조모는 장수 황씨, 조모는 인천 채씨 /씨가 뭔 줄도 모르고 시집와서 그냥 씨 뿌리고 산 것도 감이라고 /지방문에 걸렸다, 그게 다 시가 되어 /불씨처럼 화끈 달아오르면 /감은 요리조리 데치고 볶고 삶고 /그걸, 다 우려낸 게 시 아니 씨라고 그러지 뭔가 /앗!

(김욱진 詩, '씨/시, 앗!)

이 시는 한 편의 시를 빚는 과정이 한 눈에 선하게 와 닿지요(구체적 묘사). 밤중에 감 홍시 하나 물컹 삼키다 감 씨가 목에 걸려 시가 되어버렸다는 기발한 착상입니다. '씨가 시가 되는 건 감'이라고, 시인 안도현 씨의 말을 빌려온 것처럼 능청떨고 있어요. 먹는 감과 느끼는 감 사이를 오가며 시상을 풀어가고 있지요(언어의 전이성). 이러한 씨-시의 상상력은 다시 씨로 번져 성씨 나아가 불씨로 엉겨 붙습니다. 그 감을 다 우려낸 게 시 아니 씨라고, 시인은 큰스님 법상 주장자 내려치듯 앗! 하고 외칩니다(공감각적 이미지).

김욱진 시인
김욱진 시인

김욱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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