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홍준표 서울정경부 기자

홍준표 서울정경부 기자
홍준표 서울정경부 기자

"서병수에서 정홍원으로 얼굴만 바뀌었지 경선 관련 잡음은 계속될 거야."

지난달 23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 대선후보 경선 선거관리위원장에 정홍원 전 국무총리를 선임하자 정치권 인사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날 국민의힘 소속 한 의원 역시 기자에게 선관위원장 인선을 통한 지도부의 경선 불공정성 논란 봉합 노력에도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정 전 총리가 계파색이 옅은 분이라는 평을 듣지만, 과거 친박(친박근혜)에 깊숙이 있었다. 예민한 시기이다 보니 과거 계파와 선관위 행보를 연결 짓는 불공정성 논란이 다시 대두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요지였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말이 있다. 국민의힘은 이 말을 고작 열흘 만에 보여 주었다. 지난 5일 정홍원 국민의힘 선관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했다가 번복하는 일이 빚어졌다. 정 위원장은 경선 여론조사에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 여부를 놓고 주자 4명이 집단 반발하자 이준석 대표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이후 지도부가 만류하자 사의를 거둬들였다. 결국 이날 열린 공정 경선 서약식도 전체 12명 가운데 홍준표, 유승민, 안상수, 하태경 등 후보 4명이 불참하면서 반쪽자리 행사로 치러졌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1야당은 대선 승리를 '따 놓은 당상'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일찌감치 '게임의 법칙'을 정하고 전국 순회 경선에 들어간 반면 국민의힘은 한 달 가까이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탓이다.

시작은 대표와 주자들이 직접 나서는 '대포 싸움'이었다. 여기에 캠프 참모들까지 SNS를 통한 '소총 싸움'에 나섰다. 특정 후보를 향한 '저거 곧 정리된다'는 대표의 발언 진위를 두고 벌인 '내부 총질'은 그 결정판이었다. 이어 멸치, 고등어, 돌고래, 레밍이 출몰하는 '동물의 왕국'이 펼쳐졌다. 그러는 사이 애초 예정된 두 차례 토론은 일방적 연설로 진행하는 한 차례 비전발표회로 대체됐다. 이마저도 각자 준비한 원고를 7분가량 읽고 자리를 뜨는 바람에 맥이 빠졌다. '비전 없는 비전발표회'라는 조소까지 나왔다.

결국 정시에 출발한다던 국민의힘 경선버스는 한 달째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그동안 '정권교체'라는 대의(大義)와 구호만 난무했다. 정책과 비전, 대안을 제시하는 수권 정당의 면모는 온데간데없다. 그 결과는 냉혹하다. 한때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론'이 '정권유지론'보다 20%포인트(p)가량 높았지만 최근 그 격차는 10%p 안팎으로 줄었다. 정권교체론이 우세함에도 대선 후보 선호도에선 야당 후보들이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7일 현재 여의도 정가에 또다시 '불길한 예감'이 나온다. 국민의힘이 '역선택 방지 조항'을 도입하지 않기로 하면서 '경선 룰' 갈등이 잠시 가라앉았지만 선관위의 절충안인 '본선 경쟁력' 문항을 두고 2차전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구체적인 문구에 따라 각 대선주자의 유불리가 나뉠 수 있어서다. 이미 일부 후보 측에서는 "본선 여론조사 문항도 문구에 따라 사실상 역선택 방지 조항이 될 수 있다" "당내 경선에서 한 번도 실시한 적 없는 경쟁력 조사를 도입하는 것이 적절하냐" 등 뒷말이 나온다.

이번에도 불길한 예감이 틀리지 않는다면, 제1야당이 수권 역량과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대신 진저리 나는 '집안싸움'을 보여준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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