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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표절 논란이 남긴 아픔과 상처

김태곤 대백프라자 갤러리 큐레이터
김태곤 대백프라자 갤러리 큐레이터

현대미술의 쟁점 중 표절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논쟁의 중심에 있는 '표절'과 '차용'이라는 모호한 문제는 현대미술이 갖는 표현의 한계,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미디어의 발달로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작가의 독창적 예술품을 무단 도용하는 표절행위는 엄연히 불법이긴 하지만 이러한 논쟁은 우선 미술계 내부의 건전한 비평 활동으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새로운 조형의식을 기반으로 미술을 다루는 작가들에겐 표절과 창작이 가지는 기억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대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작가 박정현의 작품 '방해(disturbing)'의 표절 논란 사건은 법적 분쟁이 남긴 한국 미술계의 민낯을 보여 준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박정현은 대구미술관이 역량 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마련된 'Y artist project' 초대 작가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2014년 2월 11일부터 6월 1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comfortable-Un-comfortable'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진행했다. 하지만 부산에서 활동 중이던 손몽주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박정현 작가가 표절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전시회는 겉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벽면에 고정한 고무밴드를 이용해 공간을 분할한 손 작가의 작품과 박 작가의 작품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급기야 '미술저작물 전시금지 가처분 신청'을 대구지법이 인용하면서, 박 작가의 작품이 대구미술관에서 철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손해 배상소송까지 이어지며 박정현 작가는 '표절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부산고등법원은 손 작가가 박 작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이로써 7년 동안 진행된 법적 다툼은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2014년 당시 박정현 작가는 그 어떤 작가보다 열정적이고 의욕에 찬 청년작가였지만 이제는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고 말았다.

초기 입체파 시절의 피카소와 브라크는 서로의 작품을 참조하면서 전문가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사한 작품을 제작했지만, 결코 모방이라 평가하거나 표절 논쟁에 휩싸이지는 않았다. 또한, 인상주의 화가 마네의 '올랭피아'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나 지오르지오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모방하고 있지만, 이 또한 예술적으로 용인되는 창조적 모방으로 평가하고 있다. '인용'이나 '차용'이 현대미술의 정당한 방법론이라고 해서 무분별한 표절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표절'과 '차용'은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하기 이전에 우리 미술계가 다 함께 해결해야 할 제도적 과제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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