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리스펙트'

영화 '리스펙트'의 한 장면
영화 '리스펙트'의 한 장면

음악계에는 여왕이 여럿 있다.

'팝의 여왕'이라고 하면 마돈나지만, 휘트니 휴스턴 역시 여왕이라 불렸다. '블루스의 여왕'은 베시 스미스다. 후에 다이나 워싱턴 또한 자신을 여왕이라 했다. '재즈의 여왕'은 빌리 할리데이와 엘라 피츠제랄드의 수식어였다.

그러나 '소울의 여왕'은 대체로 한 명으로 귀결된다. 세계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손꼽히는 아레사 프랭클린(1942~2018)이다.

아레사 프랭클린을 처음 만난 것은 '블루스 브라더스'(1980)라는 영화였다. 시카고 출신의 악당 형제가 자신이 자란 고아원을 살리기 위해 옛 밴드를 다시 결성한다는 유쾌하고 경쾌한 영화였다. 이 영화에는 제임스 브라운, 레이 찰스, '펑크의 여왕' 샤카 칸 등 유명 음악인들이 실제 등장하는데 아레사 프랭클린 또한 식당을 운영하는 기타리스트의 아내로 나와 극 중에서 'Think'를 춤추면서 부른다. 대단한 가창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최근의 영화는 '업사이드'(2017)를 통해서다. 노숙자 흑인과 하반신이 마비된 억만장자의 우정을 그린 영화로 패러글라이더를 탈 때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 곡이 아레사 프랭클린이 부른 '투란도트'의 명곡 'Nessun Dorma'이다. 영화 속 억만장자는 "우리의 여왕"이라면서 그녀를 칭송한다.

이 곡은 놀라운 즉흥 무대에서 탄생됐다. 199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출연해 'Nessun Dorma'를 부르기로 예정돼 있었다. 72인조 오케스트라가 준비돼 있었고, 파바로티의 음높이로 이미 연습도 마쳤다. 그러나 갑자기 목에 이상이 생겨 파바로티가 출연할 수 없게 됐다. 난감해 하는 제작진 앞에 아레사 프랭클린이 대타로 나섰다. 그녀는 15분간 악보를 훑어보고 지휘자와 얘기한 뒤 무대에 올라 수많은 그래미 관객 앞에 이 노래를 부른다. 여성 소울 가수가 남성 테너를 대신해 푸치니의 명곡을 부르는 즉흥 무대는 관객들에게 놀라운 경험을 선사하면서 두고두고 회자된다.

영화 '리스펙트'의 한 장면
영화 '리스펙트'의 한 장면

18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1987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여성 흑인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입성한 아레사 프랭클린. 그녀의 전기영화 '리스펙트'(감독 리슬 타미)가 8일 개봉했다.

1952년 디트로이트. 10살 흑인 소녀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파티에 참석한 손님들 앞에 나온다. 자다 일어난 소녀는 화려한 유명인사들 앞에서 놀라운 솜씨로 노래를 부른다. "몇 살이냐?"고 한 손님이 묻자 어떤 이가 "10살이지만 30살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말한다. 이처럼 그녀는 천부적인 가수였다. 다섯 옥타브까지 넘나드는 바람에 웬만한 가수들은 그녀와 한 무대에 서기 꺼려했을 정도였다.

어린 아레사 프랭클린은 침례교 목사인 아버지에 의해 기독교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가수를 시작한다. 14살에 교회에서 녹음한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놀라운 가창력에 작곡, 피아노 실력까지 갖췄지만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후 전설적인 음악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를 만나면서 성공가도를 걷기 시작한다. 1967년 발표한 곡 '리스펙트'는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며 흑인 시민권 운동 현장에서도 널리 불렸다. '리스펙트'가 성공할 때 제리 웩슬러는 아레사에게 '소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다.

영화 '리스펙트'의 한 장면
영화 '리스펙트'의 한 장면

영화는 화려한 가수로서의 성공뿐 아니라 10살에 엄마를 여읜 후 아버지와의 불화, 10대 미혼모로서 첫 결혼과 남편의 폭행, 과도한 음주 등 개인사의 아픔까지 상세히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흑인으로 살아야 하는 시대성과 함께 가수를 넘어 신앙인으로서 종교적 색채도 포갠다. 아레사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맞선 상징적인 인물이다.

아레사는 16살 때부터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집회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1968년 킹 목사의 장례식에서 통곡하는 듯 부르는 추모곡은 더욱 가슴을 울린다. 그녀가 부르는 가스펠송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또한 절절하다. 자비와 은총이 간절했던 그녀의 망가진 영혼은 이 노래를 통해 치유되고, 그녀의 중요한 대표곡이 된다.

'리스펙트'는 그 시대를 기억하는 음악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음악영화다. 당대의 역사적인 사건과 함께 기억되는 'Respect', 'Think', 'Chain of Fools' 등 명곡들과 그 곡의 탄생과 이면의 이야기들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영화 '리스펙트'의 한 장면
영화 '리스펙트'의 한 장면

특히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는 '드림걸스'(2006)의 제니퍼 허드슨이 아레사 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선보인다. 그녀는 이 영화를 위해 피아노 레슨까지 받으며 역에 몰두했다고 한다. 포레스트 휘태커가 아레사의 아버지로 출연해 또 다른 감상에 젖게 한다. 그는 재즈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의 삶을 그린 '버드'(1988)로 알려지기 시작한 배우다. 약물과 술에 찌들어 비운에 간 찰리 파커가 오버랩되면서 '리스펙트'를 더욱 아련하게 만든다. 145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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