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출신 그리그의 '페르 귄트 모음곡'은 북유럽 정취가 물씬 배어 있는 음악이다. 노르웨이의 풍경처럼 웅장하면서도 아름답고, 때로는 북해의 차가운 바람과 잿빛 어둠을 연상시키는 쓸쓸함이 혼재돼 나타난다.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이 1867년에 완성한 '페르 귄트'는 동명의 전설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5막의 시극(詩劇: 운문이나 시의 형식으로 쓴 희곡)이다. 이 작품은 페르 퀸트라는 남자와 순정적 여인 솔베이그의 이야기다. 젊은 페르 퀸트는 아내 솔베이그를 집에 두고 세상의 모든 쾌락을 좇아 방황한다. 남의 부인을 약탈하기도 하고 험준한 산에서 마왕의 딸과 같이 지내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추장의 딸과 청춘을 즐기지만 허망하게 끝난다. 결국 늙고 병든 몸으로 집에 돌아가 아내의 무릎에서 죽는다.
그리그는 입센의 의뢰로 시극 상연을 위한 음악을 작곡했는데, 20여 곡 중에서 맘에 드는 8곡을 골라 두 개의 관현악조곡으로 편성했다. 제1모음곡은 1곡 '아침의 기분', 2곡 '오제의 죽음', 3곡 '아니트라의 춤', 4곡 '산속 마왕의 궁전에서' 등이다. '아침의 기분'은 전주곡으로 조용한 새벽빛이 떠오르는 모로코 해안의 아침을 목가 풍으로 묘사했다. '오제의 죽음'은 죽음의 애통함, 비통함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는 노래다. 음악만 듣고 있어도, 당장 가슴 아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만 같은 감수성 짙은 곡이다. 육영수 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때 장송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니트라의 춤'은 추장의 딸 아니트라가 요염하게 춤을 출 때 흐르는 곡이다.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데, 현악군과 트라이앵글 연주가 동양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제2모음곡은 1곡 '신부의 약탈과 잉그리드의 탄식', 2곡 '아라비아의 춤', 3곡 '페르귄트의 귀향', 4곡 '솔베이그의 노래'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아내가 남편을 그리며 부르는 애틋한 사부곡 '솔베이그의 노래'가 가장 많이 연주된다. 여인의 간절한 마음이 음표로 변해 애절하게 흘러내린다. 지난날을 후회하는 페르 퀸트가 투신자살을 하려 할 때 멀리서 솔베이그 노래가 들려온다. 그곳을 따라가 보니 머리가 하얗게 센 솔베이그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본래 성악곡이지만 모음곡에서는 기악곡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이 곡은 독립된 가곡처럼 불려지기도 하고, 다양한 편성에 의해 연주된다.
한 사람 일생의 배경음악이어서 그런지, 페르 귄트 모음곡은 각각 색깔이 다르다. 완전히 다른 음악 같지만, 페르 귄트의 여정을 떠올려 보면, 금세 한 맥락으로 수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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