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 10味 이야기] 해산물 '모디' 넣은 걸쭉한 국수…모리국수

뱃사람이 버린 아귀·물메기 등 갓 잡은 생선에 고춧가루 팍팍
미더덕·홍합으로 '담백한 국물'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혜원모리국수집에서 갓 올린 모리국수가 끓고 있다. 김대호 기자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혜원모리국수집에서 갓 올린 모리국수가 끓고 있다. 김대호 기자

70년대 이전을 기억하는 동해안 사람들은 무척 물고기가 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따금 그물에 잡은 어물이 너무 많아 끌어올리지 못하고 그물채 끌고 항포구로 들어와 작은 배로 생선을 퍼내기도 했다. 때로 자신들의 배를 너무 과신하고 억지로 끌어올리려다 배가 균형을 잃고 침몰하는 사고들도 있었을 정도였다는 전설 같지만 기록에도 나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민들은 금(값이)이 좋은 생선(주로 횟거리)들은 내다 팔고 남은 생선들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부족하기 쉬운 영양을 보충했다. 생선을 쓱싹 손질해 넣어 끓이고 국수를 넣으면 그게 모리국수의 원형이었다.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석병리 출신 60대 김씨의 기억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석병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60대 김씨는 중학교 시절 대나무 낚시대를 들고 동네 앞바다에 나가면 놀래기(놀래미), 꺽자구(깍다구, 농어 종류), 열갱이(우럭 종류), 메이(망상어)를 한 대야씩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
김씨의 아버지는 선장이자 선주였다. 만선으로 돌아오던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자라서였을까. 어린 김씨가 낚시로 한껏 의기양양하게 물고기를 잡아 돌아 오면 어머니께서는 친척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 집에서 반찬으로 먹기도 했다. 이때 이런 고기들과 국수를 함께 넣어 일곱 식구가 둘러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맛있게 먹었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기로 그땐 그 음식엔 이름이 없었다.
김씨는 그때 먹었던 음식이 지나고 보니 요즘 말하는 모리국수였다.
육지에서 민물고기로 어죽, 어탕, 어탕국수를 만들어 먹었다면 바닷가 사람들은 민물고기 대신 바다생선으로 이 같은 음식들을 즐겼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현재 모리국수는 구룡포의 어부들이 먹던 얼큰한 국수에서 유래된 것이 정설로 굳어져 가고 있다. 양은냄비에 갓잡은 생선과 해산물, 콩나물, 고춧가루, 마늘 양념장, 국수 등을 넣고 걸쭉하게 끓여낸다. 먹는 사람들이 많이 먹을 때는 큰 가마솥에도 끓여 먹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지만 바다는 아낌 없이 사람들의 배를 불려 주었다. 청어나 꽁치가 흔하던 시절 구룡포 선창가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먹었던 음식이 꽁치 어탕과 어죽이었다. 여기에 면을 보태면 더 풍성한 한끼였다.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혜원모리국수집 모리국수. 2분 정도 끓인 뒤 해물을 먼저 덜어 먹고 면은 5분 정도 더 긇여 먹는 게 맛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김대호 기자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혜원모리국수집 모리국수. 2분 정도 끓인 뒤 해물을 먼저 덜어 먹고 면은 5분 정도 더 긇여 먹는 게 맛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김대호 기자

◆구룡포에서 전국으로
10여년 전까지는 모리국수는 포항에서도 구룡포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지난 2009년 가수 고 함중아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린 시절 먹었던 모리국수를 언급하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해 당시 2, 3곳밖에 없던 모리국수 집이 이젠 구룡포에서만 10여 곳이 됐다. 또한 포항 시내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 모리국수집이 심심찮게 영업 중이다.
요즘 코로나19 여파로 많이 줄었지만 지난 2019년까지만 해도 포항 구룡포의 유명한 모리국수집 몇 곳은 하루 수백명의 손님이 전국 곳곳에서 다녀가기도 했다.
모리국수가 짧은 시간 포항 음식에서 전국적인 사랑을 받는 것은 레시피의 자유로움이다.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 콩나물, 고춧가루, 마늘 양념장, 쪽파 그리고 국수 등을 듬뿍 넣어 걸쭉하게 끓이는 모리국수지만 예전과 지금, 식당 주인들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대게 값이 헐했던 시절에는 대게로 국물 맛을 더 감칠맛 나게 했다. 수십년 전 꽁치난 명태가 흔했던 시절엔 이것들이 모리국수의 주인공들이었다. 생선들이 귀해지면서 예전에는 뱃사람들이 버렸던 아귀나 꼼치(물메기)가 담백하고 시원한 모리국수 맛의 중심이 됐다. 미더덕, 열합, 작은 새우 등 멋진 조연들이 바다 냄새를 돋우는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예전 뱃사람들이 때론 술안주로 때로 해장으로 즐겼던 음식이라 해물 맛에 길들여지지 않은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는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0년 전 1인당 5천원 했던 가격이 요즈음은 7천~8천원 선이지만 이만한 가격이면 다른 별미 음식들에 비하면 가성비도 괜찮다.

◆재밌는 모리국수 어원
어쨌든 포항 모리국수는 80여년 전부터 바닷가 사람들이 즐겼던 토속음식이라는 것이 이제 정설로 굳어가고 있다. 하지만 하필 왜 모리를 붙였을까.
모리국수라는 이름은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을 '모디'('모아'의 사투리) 넣고 여럿이 모여 냄비째로 먹는다고 '모디국수'로 불리다가 '모리국수'로 정착됐다는 설도 있고, 음식 이름을 묻는 사람들에게 포항 사투리로 "나도 모린다"고 표현한 게 '모리국수'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구룡포를 연구한 한 논문에 따르면 구룡포는 일제강점기 1930년에서 1945년 사이 일본 어선 990여척과 조선인 어선 약100여척이 모여드는 곳으로 소속된 어부가 1만2천명에 달했으며 인구는 일본인 900명과 한국인 1만3천명이 살고 있었다. 1945년 광복으로 일본인이 돌아갔고 주인을 잃은 집과 토지 등의 재산이나 산업은 지역민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갖추어 놓은 기반위에 고등어 청어 정어리 등이 넘쳐나는 어장을 소유한 구룡포는 동해안의 어업전진기지로 성장하였고, 1970년대만 해도 개(犬)가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농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다.
이러한 구룡포의 역사를 살펴보면 모리국수에 대한 일본어 관련설도 나름 설득력이 있다. '풍성하다'라는 뜻을 가진 盛(성)이나 '무성한 숲'을 가리키는 森(삼)의 일본어 훈독 '모리'와 우리말 국수와 붙여 모리국수로 불리게 된 것이란 설과 추정도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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