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밟힌 아픔을 딛고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발을 밟힌 아픔은 밟힌 사람만이 안다.'

대구에서 학대아동 보호시설인 '즐거운 우리집'을 2013년부터 운영하다 코로나19로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는 일본인 여성 오카다 세쓰코(82) 전 시즈오카현립대학 교수가 11일 대구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는 일본인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보낸 긴 영상에 나오는 말이다.

그가 이런 속담을 비롯한 긴 내용의 영상을 보낸 까닭이 있다. 마침 이날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선 재한일본인여성합창단 '이코이'(憩)의 '한일교류음악회 및 교류회'가 열렸다. 이날 출연 합창단원들이 그가 대구에 머물 때 아끼던 결혼 이주 일본인 여성들이고, 지난 2017년 합창단이 꾸려지고 그들의 대모(代母) 같은 역할을 한 인연 때문이다.

특히 이날 행사는 그동안 이코이 합창단이 음악을 통한 한일 교류 추진과 대구경북에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지난 1983년 출범한 재단법인 일한문화교류기금의 첫 재정 지원을 받아 열린 만큼 의미를 더했다. 장소도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구의 대표 무대였고, 한일 청중이 함께 모인 행사였으니 그들에게 해줄 말이 많았을 법도 하다.

한일 간 갈등 속에 사랑하는 한국인 남편과 가족을 꾸린 그들에게 코로나로 참석은 못 했지만 영상으로라도 힘과 용기를 주고자 했다. '한일의 가교, 함께 손을 잡고'라는 부제(副題)처럼 음악으로 두 나라의 가교(架橋)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계명대학교 유학 인연으로 대구에 머문 오카다 여사는 영상에서 한일의 신뢰와 이해, 우정을 위한 활동을 기원했다. 그러면서 친절한 한국인 사회에서 '일본은 좋아하지만 일본인은 싫다'는 충격의 말을 들은 옛 경험을 털어놓고 식민 지배에 대한 한국인의 아픔의 이해를 강조했다. 특히 "상대의 '아픔'을 무시하는 것으로서 진정한 우호 관계가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지난해 대구독립운동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에 유일한 일본인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도 만나 가슴을 열고 대화했던 오카다 여사의 울림 있는 이번 영상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고 싶다. 또한 이코이 합창단원의 노래가 한일의 가교가 되듯, 민간 차원에서라도 노래로 한일이 손을 잡고 함께할 날을 대구에서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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