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랜 원망, 정신질환, 경제 문제에… 살인자된 자식들

[조손가정 보살핌 시급] 판결문으로 본 존속살해 범죄…대구지법 15건 분석
범행 동기…정신질환 등 심신미약, 오랜 앙금, 부양 문제와 같은 경제적 이유

지난달 30일 오전 0시 10분쯤 대구 서구 비산동의 한 주택에서 할머니의 잔소리가 심하다는 이유로 고등학생 형제가 70대 친할머니를 흉기로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전 취재진들이 사건이 발생한 해당 주택을 취재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달 30일 오전 0시 10분쯤 대구 서구 비산동의 한 주택에서 할머니의 잔소리가 심하다는 이유로 고등학생 형제가 70대 친할머니를 흉기로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전 취재진들이 사건이 발생한 해당 주택을 취재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2016년 이후 현재까지 대구지법 및 대구지법 서부지원에서 존속살해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판결(1심 기준)은 모두 15건이다. 존속살해 사건을 범행 원인별로 분석한 결과 크게 ▷정신질환 등 심신미약이 인정된 경우 ▷오랜 세월 쌓인 앙금 끝에 존속을 살해한 경우 ▷부양 문제와 같은 경제적 이유 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쌓인 앙금

오랜 세월 가족 간 쌓인 앙금과 오해는 일순간 범죄로 이어졌다. 관계 위기를 겪는 가족들에 대한 상담 서비스 등을 통해 평소 갈등이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2016년 아들 A(58) 씨는 어머니(88)를 20년간 부양하며 한 집에서 함께 살았지만 평소 모친에게 쌓인 앙금이 많았다. A씨의 친아버지는 자신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3살이던 A씨를 이모에게 맡긴 채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A씨가 8살이 됐을 무렵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그는 새아버지와 살게 된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A씨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후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새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18세가 되던 해부터는 오징어배, 꽁치잡이배 등에서 선원으로 일했다. A씨의 가슴에는 10대 때부터 돈을 벌려고 고생하면서 살아온 게 모두 어머니 때문이라는 원망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던 2016년 9월 26일 오후 4시쯤 영천에 있는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던 A씨는 어머니가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본다고 생각했다. 이어 소주를 반 병 정도 마신 뒤 "다른 집 자식들은 엄마 혼자서도 공부를 많이 시켰는데 엄마는 뭐했냐. 공부도 초등학교만 시키고, 머슴살이 시키고 꽁치배 타게 하고"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이에 어머니가 욕설을 하며 달려들자 A씨는 어머니를 밀쳤고 뺨, 가슴 등 온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마을회관으로 피신했다가 같은 날 오후 8시가 넘어 다시 집으로 온 어머니를 향해 A씨는 또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A씨는 쓰러진 어머니를 방안에 옮겨 방치했고 다음 날 어머니는 숨을 거뒀다.

대구지법은 "평소 어머니에 대한 원한이 쌓여 있던 중 술에 취한 상태에서 어머니가 욕설을 하며 달려들자 흥분해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의 여동생들인 유족들도 오빠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부양 스트레스 등 경제적 이유

지병이 있는 나머지 가족을 위해 오랜 시간 홀로 생계를 책임지던 자녀가 부모를 살해한 경우도 있었다. 가족 구성원 중 일부가 질병 등 경제적인 부담을 짊어질 경우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대목이다.

맏아들인 B씨는 고3이던 2016년부터 만성 신장병을 앓는 아버지(53)와 유방암 투병 중인 어머니(51), 학생인 여동생의 생계까지 책임졌다. 이 때문에 B씨는 상당한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와 중증의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러던 2018년 11월 어느 날 B씨는 부모를 모두 살해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같은 달 19일 오전 12시 35분쯤 대구 달서구에 있는 집 안방에서 자고 있던 아버지의 목을 졸랐다. 아버지가 몸부림치자 흉기를 한차례 휘둘렀고 다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어 B씨는 여동생과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어머니를 유인해 안방으로 불러들였고 뒤에서 흉기를 휘둘렀다. 그는 어머니에게 "나도 친구들과 마음 놓고 놀고 싶고, 돈도 마음대로 쓰고 싶다"고 말하며 재차 흉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여동생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이 B씨를 체포해 어머니 살해는 미수에 그쳤다.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B씨에 대해 "범행 결과가 참혹하다"면서도 "어머니가 아들의 처벌을 바라지 않고 있고 여동생도 선처를 탄원한다. 그간 가족을 부양하며 성실히 살아왔고 전과가 없고 범행을 후회하며 깊이 반성한다"며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정신질환 등 심신미약

존속살해 범죄 가운데 정신질환을 앓는 자녀를 돌보다 연로한 부모가 자녀에게 살해당한 경우가 있었다. 자녀가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했음에도 부모 이외 다른 기관이나 가족들로부터 관리·감독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가정이 많았다.

2016년 7월 31일 경산에 살던 C(53) 씨는 평소 어머니(88)의 잔소리 때문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날 오전 1시 45분쯤 잠에서 깬 어머니가 안방 불을 켜자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옆구리를 발뒤꿈치와 무릎으로 내리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C씨는 2008년부터 알코올 의존증 등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아왔다. 과거 그는 돈을 안 준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폭행하거나, 주민들에게 시비를 걸며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는 별다른 직업 없이 어머니와 함께 20년을 시골 주택에 머물며 대인관계가 협소했고, 그를 돌볼 의지를 가진 가족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법원은 C씨의 재범을 막을 사회적 유대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해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도 명했다.

대구지법은 C씨에 대해 "패륜적인 범행으로 오랜 세월 아들을 돌보던 어머니가 생명을 잃는 극히 중대한 결과가 발생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오랫동안 정신질환을 앓아왔고, 그 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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