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뉴스 Insight] 국민지원금 '상위 12%' 셈법에 멍드는 민심

모호한 건강보험료 지급 기준에 피해 국민 불만 폭주…3인 이상 근로자 가구는 이의신청도 못 해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현장 접수를 앞둔 지난 10일 서울 성북구 길음1동 주민센터에서 한 시민이 국민지원금 관련 이의신청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현장 접수를 앞둔 지난 10일 서울 성북구 길음1동 주민센터에서 한 시민이 국민지원금 관련 이의신청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누군가에겐 참으로 원망스러운 국민지원금이다. 국민 대다수에게 25만원씩 주는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코로나19 제5차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 등 국민의 한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가구당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삼은 이상한 셈법 때문이다.

국민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상위 12%'에 포함된 가구 구성원 다수는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포함되는지 의아스럽게 여긴다. 근로자가 많은 가구가 대표적이다. 고액 연봉과는 거리가 멀고 가족 3명이 일하고도 공기업 직원 한 명의 벌이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런 가구는 건강보험료 선정 기준상 '상위 12%'에 포함된다. 국민지원금 받지 않는 것을 자랑하는 얘기도 나돌지만, 일부 부잣집 자식들의 철들지 않은 행동일 뿐이다.

50대 A 씨는 주민등록법상 아들, 딸과 3인 가구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가족은 모두 남들이 꺼리는 3D 직종의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 연봉은 3천만원 초반에서 4천만원 중반대다. 3명의 연봉을 합치면 1억원이 좀 넘는다.

A 씨는 당연히 받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국민지원금 대상이 아님을 확인하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는 국민지원금을 소득 하위 88%까지 준다는데 자신의 가족이 이에 포함되지 않는 기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국민 가운데 상위 12%라는 사실은 더 인정할 수 없다.

A 씨는 가족 3명이 가진 부동산은 3억원대 아파트가 전부이고 아들과 딸은 돈을 아끼려고 주소를 옮기지 않고 타지에서 회사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A 씨 가족이 국민지원금을 받지 못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꼬박꼬박 낸 탓이다.

A 씨 가족 3명이 지난 6월에 낸 건강보험료는 32만여원으로 3인 맞벌이 기준 30만8천300원을 1만여원 초과했다. 하지만 A 씨 가족은 한 명이라도 주소지가 달랐다면 3명 모두 국민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국민지원금 건강보험료 선정기준표에 따르면 1인 가구 직장 가입자의 본인부담금은 14만3천900원이다. 2인 가구 맞벌이는 24만7천원이다.

A 씨처럼 모호한 기준 때문에 25만원을 받지 못하는 국민의 불만이 폭주하는 등 이번 국민지원금은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국민지원금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일부 국민에게 박탈감을 심어주는 재난지원금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국민지원금 온라인 신청이 시작된 지난 6일부터 13일까지 8일간 누적 신청 인원은 3천207만9천명, 누적 지급액은 8조197억원이다. 행안부가 집계한 국민지원금 지급 대상자(잠정)는 4천326만명이다. 전체 지급 대상자의 74.2%가 지원금을 받은 셈이다. 전 국민 대비로는 62%에 해당한다.

이의신청도 늘어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6~12일 일주일간 접수한 국민지원금 이의신청 건수가 11만858건에 이른다. 하루 평균 1만5천 건이 넘는 이의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사유별로는 건강보험료 조정이 4만5천637건(41.2%)으로 가장 많았고, 출생 등에 따른 가족 구성원 변경 3만9천563건(35.7%), 재산세 과세표준 이의 3천483건(3.1%) 등이 뒤를 이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의 경우 총 39만6천 건의 이의신청이 접수됐고, 이 가운데 34만 건(85.9%)이 수용됐다.

이의신청이 폭주하자 정부와 여당은 지급 범위를 소득 하위 88%에서 90%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약 88%에서 90%로 확대할 경우, 3천억원 안팎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국민지원금 이의신청을 최대한 국민 입장에서 판단해 구제하겠다. 민원과 걱정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부의 대응"이라고 했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의신청이 합당한 경우가 꽤 있어서 안 받아 줄 수 없다. 정부가 이의신청을 받아들이면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이) 90%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안도걸 기획재정부 차관(왼쪽)이 지난 13일 세종시 소담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국민지원금 관련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안도걸 기획재정부 차관(왼쪽)이 지난 13일 세종시 소담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국민지원금 관련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문제는 지급 기준이 기존 88%에서 90%로 높아지더라도 이에 포함되지 않는 하위 90.1% 등 지급 경계선에 걸친 국민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다는 점이다. 3인 근로자 가구 등 실질적으로 국민 소득 수준 상위 12%에 포함되지 않지만, 국민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박탈감은 오히려 더 높아질 것이다.

이번 국민지원금은 선별 지급을 채택하면서 국민 불만과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해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때부터 보편·선별 지급을 놓고 혼란이 있었다. 보편 복지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건강보험료를 소득 기준으로 삼기에는 미비한 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경계를 나누는 선별 지급은 사회적 갈등 등 부작용을 근본적으로 잉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경기지사는 도 예산을 들여 도민 100%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다시 한번 정치 쟁점화했다. 과거부터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 보편 복지를 주장해 온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우려했던 상황이 됐다"며 "국민지원금 첫 지급이 시작된 이후 5일간 이의신청만 7만 건이 넘는다"고 했다. 이 지사는 "선별 지급을 결정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라며 "지금이라도 전 국민 보편 지급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국민지원금 지급 논란을 보면 문재인 정권의 아마추어적인 국정 운영 능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불만이 폭주하자 정부와 여당은 지급 대상을 늘리기로 했는데, '하위 90%' 등 어떤 기준이 있는 게 아니고 항의하면 최대한 수용하는 형식이라고 한다. 불만이 있으면 쟁취하라는 좌파 정부의 발상인가. 국민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애초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정부·여당이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지원금 지급 대상을 결정할 때 "적합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의 부과 체계가 달라 소득 분류 기준으로 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당정은 국민지원금 대상을 놓고 논란 끝에 소득 하위 80%에 1인당 25만원씩 지급하는 것으로 지난 7월 초 결정했다. 이후 여당 내에서 전 국민 지급 주장이 계속 나오고, 여야 대표 회동에서 100% 지급 '합의' 얘기가 나오면서 7월 말 지급 범위는 88%까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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