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일본의 청춘, 고시엔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

2020년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일본에서의 올림픽은 연기되었고, 고시엔은 취소되었다.

"전 일본을 열광시키는 고시엔의 취소는 올림픽 연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실망이었다"라고 한다면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청춘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틀린 말이 아니다. 일본의 뜨거운 여름은 땀과 눈물로 이루어지는 고시엔의 스토리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고시엔이란 '일본고교야구대회'의 통칭이다. 마이니치신문이 3월에 주최하는 '선발 고교야구대회'를 '봄 고시엔', 아사히신문이 8월에 주최하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를 '여름 고시엔'이라고 한다. 둘 다 한신 타이거스의 홈구장인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리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는데, 통상 여름 고시엔을 의미한다. 여름 고시엔은 매 경기마다 4만7천 석에 달하는 거대한 고시엔 구장을 꽉 메우고, TV 시청률은 20%에 육박한다.

필자는 가나가와현 소재 공립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3학년 때 짝은 스포츠머리의 야구부 '멤버'였다. 그를 '선수'라고 하지 않은 것은 그가 프로야구 선수를 목표로 하는 친구가 아니었고, 학교의 야구부 역시 대단한 명성을 자랑하는 그런 팀이 아니었다.

다른 여타 서클과 마찬가지로 학업 외 자신들의 고교 생활을 즐기기 위한 그런 모임이었다. 여하튼 그는 새벽같이 등교해서 야구를 했고 하루 종일 시큼한 땀 냄새를 풍기니 그리 좋은 짝으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가 고시엔이 아니라 고시엔 출전을 위한 지역 예선대회에 출전할 때, 우리 반 친구들은 떼거리로 경기장을 찾았고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불렀다. 9대 0으로 패하고, 상대 선수들이 정렬해서 기세당당하게 교가를 제창하는 모습을 한 줄로 지켜만 보아야 하는 우리 학교 선수들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커다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훌쩍훌쩍 작은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언감생심 고시엔 진출까지 생각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참 아쉬웠다. 다음 날 교실에서 풀이 죽어 있을 짝을 어찌 보아야 할까 걱정도 했지만,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땀 냄새 풀풀 풍기는 운동복 차림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러니 '고시엔'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살짝 떨리면서 나의 학창 시절을 기억한다. 체육시간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것조차 귀찮아했던 여학생이었던 내가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일본이 아닌 땅에 살면서도 이렇게 기억하고 있으니, 일본의 많은 이들은 당연히 '고시엔'이라는 이름 속에서 자신의 청춘을 기억할 것이다.

고시엔에 진출하려면 지역 예선에서 최소 5연승, 고시엔에서 우승하려면 그 지옥을 뚫고 온 지역 대표들을 상대로 또 최소 5연승을 거둬야 한다. 토너먼트이니 최소 10번의 시합을 하고 모든 시합을 다 이겨야 한다.

2021년 기준으로 약 16만 명에 달하는 선수로 구성된 일본 전국의 3천600여 개 고교 야구팀 중 47개 도도부현에서 지역 단위로 예선을 거치고 49개의 팀을 선발한다. 규모가 큰 도쿄, 홋카이도만 2팀이고 다른 부와 현에서는 1팀이 선발돼 고시엔의 흙을 밟아볼 수 있다. 그러니 고시엔 구장의 흙을 가져가는 전통이 있다. 시합이 종료된 후 패배한 팀 선수들이 슬픔 가득한 얼굴로 더그아웃 앞의 흙을 주머니에 담는다. 이 모습은 고시엔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다.

고시엔이 개최되면 매스컴의 관심도 폭발적이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는 중계 일정을 조정하기 위해서 경기 일정을 당기거나 늦추기도 할 정도다. 1973년 오일 쇼크로 전기 절약이 절실했을 당시, 그 수단의 하나로 고시엔 중계를 하지 말자는 안이 있었다.

그러자 일본 국회에서 자민당도, 공산당도 모두 반대했다. 그만큼 고시엔은 일본 국민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다. 1915년 전국 중등학교 우승 야구대회가 그 시작인데, 2차 세계대전(1941~1945년) 때 대회가 중단되었으나 1946년부터 재개되었고, 개최가 취소된 것은 작년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올해는 8월 10일부터 29일까지 20일간 거행되었다. 일본 전국의 3천603개교가 도전했고, 49개 팀이 출전했다. 이번 대회 기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개막도 태풍 제9호 루핏으로 하루 연기되었고, 잦은 우천 취소로 대회가 개학 날이 눈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연장되었다. 여하튼 참 다행이다. 코로나19 속에서도 일본의 청춘들은 고시엔을 통해서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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