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 10味 이야기] 찐득한 국물에 입이 붙어버리는 '소머리곰탕'

과거 새벽시장 인근에서 성행 ‘술꾼들의 성지’
푸짐한 고기에 양파절임 한점, 다시 밥 말아 한그릇 뚝딱

포항 죽도시장의 소머리곰탕 한상. 단촐하지만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맛들이다. 신동우 기자
포항 죽도시장의 소머리곰탕 한상. 단촐하지만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맛들이다. 신동우 기자

뽀얀 국물을 휘저으니 물 반 고기 반이다.

젓가락으로 볼살을 집어 들어 소금 한 톨을 얹어 먹는다. 다음에는 혀 살을 건져 양파절임을 곁들인다.

아직 소금은 타지 않는다. 오랜 시간 우러난 쿰쿰한 국물을 온전히 즐긴다. 풋고추와 함께 몇 숟가락 떠먹고는 그제야 소금을 조금 집어넣는다. 굵은소금이기에 아주 조금만. 워낙 진한 국물이라 최소한의 밑간만 되면 족하다.

고기만 계속 건져 먹었는데 아직도 그릇에 그득하다. 그제야 밥을 말고 고추 다진 양념을 조금 푼다. 지금까지 먹었던 소머리국밥에서 아예 다른 종류로 바뀌는 기적이다.

정신없이 코를 박고 숟가락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바닥이다. 진득한 국물에 입술이 쩍쩍 달라붙었다. 몸마저 건강해지는듯한, 소머리곰탕 한 그릇이 주는 만족감이다.

죽도시장 내 소머리국밥. 그득한 고기 국물에 밥까지 말았더니 그릇에 넘칠 지경이다. 신동우 기자
죽도시장 내 소머리국밥. 그득한 고기 국물에 밥까지 말았더니 그릇에 넘칠 지경이다. 신동우 기자

◇급속히 떠오른 전통 맛의 강자

포항의 소머리곰탕은 지역민들만 즐겨왔던 숨은 맛이었다. 늦은 밤 술자리가 파하고 잠깐 해장을 위해 들리거나 아예 대낮부터 회사를 땡땡이치고 질펀하게 낮술을 즐기는 아지트이다.

알음알음 전해오던 명소가 2017년부터 백종원의 삼대천왕이나 수요미식회처럼 유명 방송을 타더니 이제는 줄을 서지 않으면 한 그릇 먹기조차 힘들다.

방송인 신동엽이 "인생 곰탕을 만났다"고 극찬한 말에 괜히 우쭐하면서도 내 손안에 보물을 뺏긴 것처럼 투정이 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머리곰탕집이 죽도시장 골목을 중심으로 넓게 포진해 있고, 각 가게마다 나름의 특성이 훌륭하다는 점이다.

24시간 운영하는 가게가 여전하고 어떤 집에서는 새우젓을, 또 어떤 집에서 볶은 소금을 내놓는 등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삶아 낸 소머리는 쫄깃한 식감을 위해서 부위별로 따로 건져낸 뒤 두툼하게 썰어 식혀 둔다. 신동우 기자
삶아 낸 소머리는 쫄깃한 식감을 위해서 부위별로 따로 건져낸 뒤 두툼하게 썰어 식혀 둔다. 신동우 기자

◇잔재주 'NO', 오로지 정성으로 빚어낸 맛

소머리곰탕처럼 준비가 간단하면서 맛을 내기 어려운 음식도 드물다.

특히 포항의 소머리곰탕은 국물을 내는데 그리 많은 잔재주가 필요치 않다.

맹물에 소머리를 4등분 해서 오래 끓여내는 것이 요리법의 전부다. 간혹 쌀뜨물을 넣어 깊은 맛을 조금 추가하는 정도다.

대신 조미료의 빈자리는 오로지 정성으로 대신한다. 맛이 화려하지 않으니 조금만 방심하면 한솥을 통째로 버리기 십상이다.

먼저 도축된 지 얼마 안 된 싱싱한 소머리를 구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싱싱하지 않으면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역한 냄새가 난다. 삶기 전 소머리를 흐르는 물에 수번 헹궈내 불순물을 깨끗이 씻어내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소머리를 그대로 삶아내는 까닭에 부위별로 익는 시간이 다르다. 익힌 정도는 꼬챙이 같은 것을 찔러 넣어 오로지 손 감각으로만 구분한다. 그렇기에 불 옆에 사람이 떠날 수가 없다.

짧게는 3시간에서 6시간까지 국물을 우려내고 익은 부위별로 그때그때 건져낸다. 너무 과하면 살이 풀어져 국물이 탁해지기 때문이다. 건져낸 고기를 한 김 식힌 뒤 손님상에 내놓기 전 토렴으로 온기를 입힌다. 야들야들하면서 쫀득한 고기 맛의 비결이다.

식혀낸 고기는 손님상에 나가기 전 뜨거운 국물에 토렴한다. 몇시간이나 우려낸 뽀얀 국물에 한김 식혀 쫀득해진 고기의 조화가 일주일 전에 마신 술도 말끔히 씻어내는 기분이다. 신동우 기자
식혀낸 고기는 손님상에 나가기 전 뜨거운 국물에 토렴한다. 몇시간이나 우려낸 뽀얀 국물에 한김 식혀 쫀득해진 고기의 조화가 일주일 전에 마신 술도 말끔히 씻어내는 기분이다. 신동우 기자

◇새벽시장과 함께 늙어온 노포

지금은 포항지역에 대형 우시장이나 도축장이 거의 사라진 탓에 소머리는 주로 인근 대구에서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구는 경남 밀양부터 경주, 청송 등 경북 전체에서 소가 몰려든다. 대구와 가까운 포항으로서는 당연히 더욱 싱싱하고 질 좋은 재료를 구하기 쉽다.

무수히 많은 소머리곰탕집이 있지만, 죽도시장 초입에는 아예 따로 소머리곰탕 골목이 꾸려졌다. 방송에 나온 유명 곰탕집도 대부분 여기 몰려 있다.

죽도시장 소머리곰탕 골목의 전통은 60년 전쯤 시작됐다. 포항 내항 주변 늪지대에 새벽 노점상들이 조금씩 모여들었던, 시장 초기 시절부터다.

추운 새벽 곰탕 한 그릇으로 허기를 때우거나 고된 시장 일을 마치고 소주 한 잔 걸치던 것이 시작이다.

여기에 경북 최대의 재래시장인 죽도시장 안에 있으니 김치, 깍두기, 양파절임, 풋고추 등 밑반찬마저 싱싱하다.

때문에 골목에는 60년을 함께 버텨온 노포들도 제법 많다. 아무리 젊은 가게라도 30년은 가볍게 넘는다.

10여 개의 곰탕집들이 일제히 솥을 내거는 새벽 3시쯤이면 하얀색 수증기가 골목에 가득 찬다.

본격적인 곰탕이 갖춰지는 오전 8~9시부터는 벌써부터 소주 한 병을 끼고 곰탕을 들이키는 주당들도 종종 눈에 띈다. 오래된 노포답게 친구 같은 단골들도 많은 덕에 주인과 손님이 주고받는 농이 정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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