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유적지마다 관련 인물의 상(像)이 지나치게 큰 걸 목격할 때가 많다. 땅이 넓으니 '대륙적 스케일이 참 커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야한 형상에 크기만 잔뜩 불려놓은 듯한 모습에 왠지 모를 실소가 터져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대륙적 스케일의 잔상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기억의 한 자리를 점유하고 좀체 떨쳐지지 않아 스스로 놀란 적이 있다.
2004년 미국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는 정치적인 '진보와 보수의 견해에 대한 프레임'을 이야기하면서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마'라고 얘기하는 건 오히려 더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은유적 비유로서 코끼리는 하나의 프레임(틀)으로 고착돼 모든 담론이 코끼리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정당한 합의 또는 결론을 얻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이때 필요한 것이 다른 주제 끄집어내기, 즉 '프레임 전환'이다.
앞서 중국 여행 경험에 비추어 인간 내면에는 거대한 것에 대한 경외심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거대 자연물에 대해, 때론 거대 인공구조물에 대한 집단 무의식적인 경외심은 역사 속에서 지배층이 권력 강화와 재화를 끌어드리는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숭배를 강요해 오기도 했다.
박걸 작 '우상숭배'는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적 경외심과 그로 인한 사고의 프레임 고착화, 즉 고정관념(Stereotype)을 꼬집는다.
화면 오른쪽엔 거대한 변기가 서 있고 왼쪽엔 세 인물이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세 인물은 과연 이들이 경배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있는 걸까? 거대 변기 앞에서 이들은 전체 실상을 제대로 못 본 건 아닐까?
회화적 조형언어로만 무언가 부족했던지 박걸은 왼쪽 상단에 메시지를 남겼다. 'There is no Reason'(이유는 없다)이라고. 이유가 없다는 건 맹목적이고, 맹목적인 건 어리석다.
심지어 사상이나 이념을 대중에게 주입시키고 스스로를 우상으로 만들어 복종과 섬김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예나 지금도 계속 등장한다. 나름 사회에서 존경받던 이들이 나중에 내면이나 실제 삶이 전혀 다르고 사악한 자들로 드러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실 실제보다 허상을, 이면보다 표면만 보고 믿어버리는 인간 이성의 빈약함 때문에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잘못된 프레임 속에 갇히는 꼴이다.
작가는 작품에서 숭배하는 대상의 많은 부분이 형편없는 것임을 나타내 보고자 그렸다고 했다. 거대한 변기 앞에 선 작은 사람들은 전체를 볼 수 없고, 아래 부분만 올려다보게 돼 부분만 인식할 수밖에 없다. 온전한 인식 또는 제대로 된 앎은 불가능해진 상태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상숭배'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위해 그린 작품이라기보다는 인간 이성의 위태로움을 풍자하는 개념적인 미술에 해당한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