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갯마을 차차차’, 변방의 힐링 드라마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바닷가마을 로코의 힐링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포스터.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포스터. tvN 제공

피로와 스트레스가 끝없이 이어지는 도시의 경쟁적 삶에 지쳤을 때 "도망가자~"라며 어딘가로 훌훌 떠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일 게다.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는 딱 그런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드라마다.

◆여행예능을 닮은 드라마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는 여행 예능 프로그램을 닮았다. 떠나고픈 마음이 굴뚝같지만 떠나지 못해 대신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일탈이 주는 자유와 행복감을 대리해주곤 하던 여행 예능처럼, '갯마을 차차차'는 매주 주말 밤 시청자들을 '공진'이라는 가상의 바닷가마을로 데려간다.

푸른 바다와 초록으로 물든 숲, 그리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이 펼쳐지고, 너무 작아서 마을 사람들이 마치 가족처럼 살아가는 그런 공간. 가만히 서 있으면 어디선가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밤하늘에는 가득 채워 넣은 별들이 향연을 펼치는 곳. 도시에서는 소음과 네온사인으로 듣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바닷가마을 공진이다.

서울에서 고용된 치과의사로 살아가던 윤혜진(신민아)이 공진으로 오게 된 건 '자의 반 타의 반'이다. 손님에게 과잉진료를 요구하는 원장에 반발하고, 결국 업계에 소문까지 나면서 더이상 그 바닥에서 일할 수 없게 된 터였다.

자그마한 바닷가마을에 결코 올 것 같지 않았던 윤혜진이 공진을 선택한 배경에는 돌아가신 엄마와의 추억이 있다. 엄마의 환갑 때 찾았던 바닷가마을 공진에서 '홍반장'으로 불리는 홍두식(김선호)과 인연이 엮이고 결국 공진에서 치과를 개원해 살아가게 된다.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한 장면. tvN 제공

도시녀의 시골 삶 체험은 온전히 여행 예능이 보여주곤 하는 건강한 웃음을 선사하고, 처음엔 낯설고 이상하게 보였던 그곳의 삶이 사실은 도시에서 잃고 살아왔던 온기를 되찾게 해주면서 웃음은 위로를 담은 힐링으로 전해진다. 언제 어디서든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나타나는 '만물박사' 홍반장은 서울대 출신으로 경매사, 부동산중개사 등 없는 자격증이 없는 인물이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도시를 떠나 공진에서 살아간다.

그는 "세상에는 돈, 성공 말고도 많은 가치 있는 것들이 있다"며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옷이 젖을까 걱정하는 윤혜진에게 "그러면 어떠냐"며 "널 그냥 좀 놔두라"고 한다. 그것이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도시인과는 다른 홍반장의 철학이고, 공진 사람들이 대단한 부자는 아니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유다.

도시의 경쟁적인 삶이 여전히 익숙한 서울깍쟁이 윤혜진은 조금씩 홍반장에게 빠져들고, 그 삶의 방식에 빠져들며 나아가 공진의 삶에 동화되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은 윤혜진에 빙의한 시청자들에게도 온전히 전해진다. '저게 진짜 사람 사는 맛이지'라며 마음을 턱 내려놓는 그 순간을 드라마는, 그 짧은 시간이나마 시청자들에게 선사한다.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한 장면. tvN 제공

◆따뜻한 변방의 정서를 공유하는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는 원작이 2004년 상영된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하 홍반장)'이다. 고인이 된 김주혁과 엄정화가 주인공이었던 영화. 김주혁이 했던 홍반장 역할을 이제 김선호가 맡았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모두 KBS '1박2일'과 인연을 맺은 '이 멤버 리멤버'들이다. 김주혁이 시즌3를 맏형으로 이끌었고, 김선호가 시즌4에 합류했다.

그래서일까. '갯마을 차차차'를 보다 보면 '1박2일'이 언젠가 다녀갔을 구룡포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특유의 선한 미소를 던지는 김선호와 저편 어딘가에서 웃고 있을 것 같은 김주혁이 겹쳐진다. 그 겹쳐지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건 따뜻한 변방의 정서다. '1박2일'에서 맏형이지만 늘 중심을 동생들에게 내주고 자신은 기꺼이 '구탱이(귀퉁이의 방언으로 故 김주혁의 별명이기도 했다)'에 서서 훈훈한 미소를 짓곤 했던 김주혁의 따뜻함과 '갯마을 차차차'에서 서울을 떠나 변방으로 온 홍반장의 따뜻함이 겹쳐지는 것.

이것은 변방으로 간 일련의 드라마들이 공유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KBS '동백꽃 필 무렵'에 등장한 옹산이라는 변방이 그렇고, SBS '라켓소년단'의 땅끝마을 해남이 그렇다. 이들 드라마들이 굳이 변방을 이야기의 시공간으로 삼는 이유는 그 자체가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삶과 한참 떨어진 변방의 삶이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미가 넘치는 삶의 이야기로 전화되는 그 지점들을 드라마는 그려내곤 한다.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한 장면. tvN 제공

이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그래서 그 변방을 표상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공효진)은 옹산이라는 도시에서 밀려난 변방을 그대로 닮았고, '라켓소년단'에서 가난으로 변방에 간 해강(탕준상)은 땅끝마을을 닮았다. 하지만 변방으로 밀려나 변방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인물들은 그곳이 소외된 자들의 땅이 아니라 진짜 삶이 있는 곳이란 걸 깨닫고 그곳과 동화되어간다.

'갯마을 차차차'도 마찬가지다. 공진이라는 변방을 표상하는 홍반장이 등장하고 그곳으로 밀려나 그를 점점 좋아하게 되는 윤혜진은 공진의 삶에도 점점 빠져든다. 어쩌다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이 변방에서 오히려 건강한 삶을 회복하는 역설. 지친 현대인들에게 변방의 서사가 위로와 힐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갯마을 차차차'의 고공행진에 담긴 대중정서

'갯마을 차차차'는 사실 기대작으로 시작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tvN '아르곤'과 '왕이 된 남자'를 공동집필한 신하은 작가가 썼고 '오 나의 귀신님', '하이바이, 마마' 등을 연출한 유제원 PD가 작업에 참여했다. 저마다 내공을 갖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스타작가, 스타PD라고 말할 정도로 유명한 필모의 소유자들은 아니다.

또한 김선호와 신민아 역시 '시청률 보증수표'라 불릴 만큼의 티켓파워와 기대감을 끌어내는 배우는 아니다. 그럼에도 첫 회 시청률이 6.8%(닐슨 코리아)로 꽤 높게 나온 후 계속 고공행진을 해 6회 만에 10%를 넘겨버린 건 놀라운 일이다. 무엇이 이런 동력을 만든 걸까.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한 장면. tvN 제공

물론 경쾌한 작가의 필력과 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영상을 담아내는 연출, 그리고 보는 이들을 웃기고 설레게 만드는 김선호와 신민아의 연기가 균형 있는 삼박자를 만들어낸 게 그 첫째 이유다. 하지만 그 이유와 더불어 그간 쏟아져 나왔던 핏빛 가득한 스릴러물들이 주는 자극의 피로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최근 드라마들은 너무 소리 지르고, 죽고 죽이고, 복수에 복수를 더하는 장르물들이 적지 않았다. 전작이었던 '악마판사'가 그랬고, 그 전작이었던 '빈센조'가 그랬다.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들은 악마가 되기를 자청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대적해야할 상대가 그만큼 극악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부정한 현실을 반영한 이들 드라마는, 그 현실을 드라마로 끌어와 처절한 복수를 안기는 방식으로 카타르시스를 주려했지만 그런 자극의 방식이 주는 피로감도 적지 않았다.

'갯마을 차차차'는 이런 드라마들 속에서 잠시 떠나 쉬게 해주는 편안함을 선사했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장르드라마들 속에서 어찌 보면 평이한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갯마을 차차차'가 오히려 그것 때문에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한 장면. tvN 제공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한 장면. tvN 제공

"소나기 없는 인생이 어딨겠어. 이럴 때는 어차피 우산 써도 젖어. 이럴 땐 아이 모르겠다 하고 그냥 확 맞아버리는 거야. 그냥 놀자 나랑."

드라마 속에서 홍반장은 윤혜진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은 아마도 지금의 대중들이 듣고픈 한 마디가 아닐까. 갈수록 경쟁적인 현실에 너무나 피곤해진 삶이다. 아등바등 버티며 살아가는 도시의 삶 속에서 그래도 우리를 살 수 있게 해준 건 가끔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는 잠시 간의 일탈이 아니었던가. 코로나19로 그마저 어려워진 지금, 잠시나마 일탈의 힐링을 주는 드라마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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