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포커 게임에 빠진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 올백 머리를 한 홍콩 배우가 양담배를 꼬나문 채 포커를 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양손 가득 물을 묻혀 머리카락을 뒤로 하면 머리 모양은 얼추 닮게 나왔다. 그러고는 어른 다리를 하고 나무 걸상에 앉아 '콜' '올인'을 외친다. 스크린의 도신(賭神)처럼….
문제는 수업 종이 울린지도 모르고 포커 삼매경을 이어간 데서 터졌다. 시나브로 뒤통수부터 '싸늘하다'가 느껴졌다. "갖고 나온나." '독종'이라 불리는 바닷가 출신의 교련 선생님한테 딱 걸렸다. 선생님은 6·25전쟁 때 백마고지에서도 살아 돌아오셨단다. '뻥' 아니면 '거짓말'인데 검증할 길이 없어 그렇게 믿었다. 하얀 줄 네 개짜리 '아디닥스'(짝퉁 슬리퍼 브랜드)가 땅에 끌리기라도 할까, 열 발가락에 힘을 주어 고양이 걸음으로 나아갔다. 한 친구가 이내 변을 늘어놓는다. "선생님, 전 딜러뿐이 안 했습니다." 혼자 살아남으려는 수작이었다. "뭐라꼬, 딜러? 딜러뿐이 안 했다꼬. 너부터 엎드려." 이후는 상상에 맡기겠다.
'군위-대구 편입' 관련, 경북도의회의 표결 결과를 두고 후폭풍이 거세다.
군위군과 군의회는 연일 반발 성명을 내고 1인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 안건을 상정한 도의회가 찬성도 반대도 아닌 같기도(?) 결론을 내 신공항 사업에 빨간불이 켜진 때문이다.
도의회는 이달 초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 찬성 안건은 채택 28표, 불채택 29표로, 편입 반대 안건 역시 채택 24표, 불채택 33표로 각각 부결시켰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찬성 안건이 28대 29면 반대 안건은 29대 28이어야 맞다. 의원님의 변덕이 조석변개만도 못하다는 이죽거림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결론이야 어떻든 간에 불변인 것은 지역의 중차대한 사안을 중앙정부에 헌납해 버렸다는 점이다. 특히 반대 의원님들 중에는 사적인 감정을 담은 선택이었다는 풍문이 나돌면서 의원님들 자질 시비까지 불거지고 있다. 내용인즉, 한 의원님은 지난해 신공항 설득을 위해 군위군을 찾았다. 하지만 군수에게 홀대를 당한 터라 절대 찬성해 줄 수 없다는 뜻을 세웠고 소신(?)을 지켜냈다.
일부 의원님들이 들이대는 반대 이유는 더 궁색하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신공항을 너무 밀어붙이는 바람에 '하기 싫은 서명을 했다'는 것인데, 책임 정치와는 거리가 먼 발언이다. 이런 '깜도 안 되는 얘기'가 흘러나온다는 자체가 도의회와 의원님들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표 장사용'으로 지나간 버스에 손을 드는 것이나 단순히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픈' 놀부 심보로는 도민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정치는 '신뢰'이며 대의 민주주의는 사회계약에 기초한다고 홍콩 배우 흉내 내던 학창 시절에 수없이 배웠다. 물론 7명의 의원님들은 찬성란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만 '무기명 투표'란 익명성에 숨어서야 '소신'을 지킨 의원님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다음 회기에 재논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하니, 의원님들이 앞장서서 재심의를 요구해야 한다. 가부 결정을 내지 않은 안건 상정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 없다'란 갑론을박은 제쳐 두자. '전 서명뿐이 안 했습니다'라며 약속을 뒤집는 의원님들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 도의회가 책임 정치를 보여줄 때 의회는 도민들의 신뢰를 튼튼히 할 수 있고 의원님들 개개인도 더 큰 정치를 만날 수 있다.
앞에서의 상상 결과를 밝히자면, '독종' 선생님은 '포커를 했다'는 잘못보다 혼자만 상황을 모면하겠다고 친구의 신의를 저버린 것에 대해 더 화를 내셨고 이후 친구들은 그를 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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