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국가정보원장 잔혹사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1961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이후 중앙정보부장-국가안전기획부장-국가정보원장 등 국가 정보기관 수장을 지낸 사람은 34명이다. 이 중 16명이 감옥살이를 하거나 비명횡사했다. 권력무상을 넘어 자신이 휘둘렀던 권력이 부메랑이 돼 스스로를 해치는 칼이 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남산의 부장들'로 일컬어졌던 중앙정보부장 중 두 명이 불귀의 객이 됐다. 김재규는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가 이듬해 5월 사형됐다. 김형욱은 3선 개헌에 앞장서는 등 정치사찰로 악명을 떨쳤다가 팽당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회고록을 내는 등 반(反)박정희 활동을 하다가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다. 청부 살인업자들에 의해 살해됐다는 설이 있다.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이름이 달라졌지만 잔혹사는 계속됐다. 장세동은 용팔이 사건에 안기부가 개입한 혐의로 1년 6개월간 복역했다. 권영해는 선거법·안기부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 세풍 사건으로 징역 8개월, 횡령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국가정보원장들 역시 말로가 편치 않았다. 임동원·신건은 국정원 불법 도·감청 사건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도 감옥에 갔다.

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 박지원 국정원장이 등장했다. 제보자가 의혹 보도 3주 전 박 원장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이 이 사안을 협의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박 원장은 제보자에게 조언한 것이 없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었다"며 "야당이 헛다리를 짚는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장이 대선 정국에서 야권 유력 대선주자에게 불리한 의혹을 제기하려던 제보자를 만난 것만으로도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국정원장이라는 자리가 이런 사적 관계에 시간을 할애해도 좋을 만큼 한가한 자리인가. 박 원장 처신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하기 어렵다. 국가 정보기관 수장들이 불귀의 객이 되거나 감옥에 간 것은 전 정권에 대한 정치 보복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국내 정치 개입, 정치사찰, 대통령 비자금 조성 등 스스로의 잘못이 더 컸다. 언제쯤 국가 정보기관 수장 잔혹사가 끝이 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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