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인들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후 시기 대한민국 근대화의 주역이었다. 사회, 경제, 문화, 학계 등에서 선구자 역할을 한 이들은 체육인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스포츠로 불리는 여러 운동 종목을 도입하고 선수 육성과 대회 개최 등 체육 발전에 앞장선 것이다. 이는 국내 체육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학교 체육과 사회 체육으로 나눠 경쟁하며 주체성을 갖고 스포츠 발전을 이끌었던 체육인들의 존재감은 어느 날부터 무뎌지기 시작한다. 5·16을 통해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다. 민간인 회장 체제의 지방 체육회는 시장과 도지사가 회장 자리에 앉는 관권 체제로 전환된다. 경상북도체육회 예를 들면 민선 체육회가 잦은 분란 끝에 경북도지사에게 체육회장 자리를 맡아 달라며 갖다 바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후 전국의 지방 체육회는 알려진 대로 2020년 민간인 회장 체제로 복귀할 때까지 시·도 행정기관의 들러리 역할을 했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가 민선으로 돌아선 뒤에는 사실상 시장, 도지사의 선거 단체로 전락한 상태였다.
지자체들은 하나같이 지방 체육회를 이끄는 사무처장 자리에 퇴직 공무원을 낙하산으로 앉히고 임의단체로 운영했다. 살림을 맡은 사무처장은 체육인들을 들러리 삼아 이사와 감사를 뽑는 등 집행부를 구성했다. 지자체에 예산을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기에 체육회는 체육인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 지방 체육회는 자치단체장의 치적이 되는 전국체육대회 성적 올리기에 몰두했고 대한체육회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에 관심을 뒀다.
체육회가 2016년 엘리트와 생활 체육의 통합을 추진하고 지난해 회장 선거를 통해 민간인 체육회 시대를 다시 열었지만, 체육인들이 들러리 처지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는 10월 8일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개막하는 제102회 전국체육대회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고등부만 치르는 반쪽 대회로 최종 확정됐다. 지난해 101회 대회는 코로나19 감염 여파로 대회 자체가 취소된 바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지난 17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이런 내용의 '2021년 전국체육대회 개최방안'을 보고받고 이를 논의했다. 중대본 관계자는 "대규모 체육 행사를 통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이번 전국체전은 고등부만 개최하도록 한다. 대회 방역대책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방역 차원이라고 하지만 문제가 많다. 애초에 체육인들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대학일반부 경기 취소 확정시기도 너무 늦었다. 하키 등 일부 종목의 경우 이미 사전경기를 통해 우승팀과 시도 순위까지 가려진 상태다. 체육계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일방적인 조치다.
이번 전국체전 일반부와 대학부 취소는 지난 14일 한 언론사 기사를 통해 불거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고등부 대회만 열기로 방침을 정했고 대한체육회에 이를 통보했다는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가맹 회장단과 경기단체 등을 통해 바로 반발했다.
전국 시·도체육회장협의회는 지난 14일 제102회 전국체전 정상 개최를 바라는 건의서를 발표했다. 협의회는 "지난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연기한 전국체전이 올해에도 정상적으로 개최되지 않으면 대한민국 스포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데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이번 전국체육대회를 '위드 코로나'를 여는 첫 단추로서 철저한 방역지침 준수 하에 성공적으로 개최해 스포츠의 가치를 이어가고자 한다"며 대회 시작 48시간 전과 사흘에 한 번 유전자증폭(PCR) 검사 실시, 인원 분산을 통한 최소 인원 대회 운영, 철저한 방역지침 준수 등을 약속했다.
대한체육회 경기단체연합회는 지난 15일 제102회 전국체육대회 정상 개최 요구 성명서를 냈다. 연합회는 "전국체전은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거쳐 6·25 전쟁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쉬지 않고 매년 개최됐다"고 했다. 연합회는 "우리 경기단체들은 철저한 방역시스템으로 지난 2년간 수많은 대회를 개최한 노하우가 있다"며 "올해 전국체전 개최는 '위드 코로나'를 준비하는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체육인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체육인들은 정상 개최가 관철되지 않을 땐 총리실, 질병관리청, 문화체육관광부를 항의 방문하는 등 집단행동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추석 연휴를 앞두고 내려진 전격적인 정부 방침에 따라야 하는 처지다.
전국체전 개막 21일을 앞두고 내려진 이번 정부 결정에는 책임 회피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체전 취소로 인한 체육인들과 체육 단체의 피해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체전 전체 참가 인원의 40% 정도 되는 고등부 대회만 하면 코로나19 방역이 저절로 되는가. 이미 하키 등 일부 종목은 사전경기를 했지만, 방역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정부 논리라면 감염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시점에서 개최한 도쿄 올림픽은 열리지 못할 대회였다. 우리나라는 도쿄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 게 당연한 논리다. 정부의 사실상 전국체전 취소 방침에 대해 방역을 핑계로 한 정치적인 계산이 숨어 있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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