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캔디맨'

영화 '캔디맨'의 한 장면
영화 '캔디맨'의 한 장면

1982년 '마견'(White Dog, 감독 사무엘 풀러)은 아주 색다른 콘셉트의 영화였다. 흑인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인데, 하얀 독일산 셰퍼드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고급스런 이 개는 흑인만 보면 무서운 전투견으로 변한다. 어릴 때부터 인종차별주의자에 의해 조련된 것이다. '마견'은 당시 흑인 인종차별을 그린 사회성 짙은 영화와 궤를 달리하였지만, 인종차별의 공포성을 효과적으로 잘 그려내 주목을 받았다.

'마견'이 나오고 10년 후 전설적인 공포영화가 개봉을 했으니 바로 '캔디맨'(감독 버나드 로즈)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캔디맨!"이라고 다섯 번 외치면 오른손이 갈고리인 거구의 흑인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끔찍한 죽음을 내린다는 줄거리였다. 백인들의 일상적인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흑인들의 공포가 만들어낸 괴담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겟아웃', '어스' 등 흑인 인종차별적 요소에 공포를 녹여 넣어 새로운 공포 장르를 제시한 조던 필이 '캔디맨'을 그의 영화 리스트에 올렸다. 그의 시선으로 색다르게 리메이크된 2021년 버전 '캔디맨'(감독 니아 다코스타)이 22일 개봉했다.

시카고의 공공주택단지 카브리니 그린은 범죄율이 높아 2011년 재개발되면서 과거의 흔적을 지웠다. 이와 함께 시카고의 도시 괴담 캔디맨도 점점 사라져 간다.

무명의 화가인 안소니(야히아 압둘 마틴 2세)는 성공한 미술 큐레이터이자 연인인 브리아나(테요나 패리스)와 함께 부촌으로 변모한 카브리니 그린 지역으로 이사 온다. 안소니는 여자친구에게 얹혀 사는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강렬한 예술적 성공에 목말라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독창성도 개성도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영화 '캔디맨'의 한 장면
영화 '캔디맨'의 한 장면

그러던 어느 날 안소니는 브리아나의 오빠 트로이(네이산 스튜어트 자렛)로부터 헬렌 라일(버지니아 매드슨)과 캔디맨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헬렌은 1992년 버전에서 캔디맨의 정체를 찾아 헤매던 여성 주인공. 안소니는 캔디맨의 괴담에 큰 흥미를 느낀다. 지역 토박이인 윌리엄(콜맨 도밍고)을 만나 캔디맨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안소니는 캔디맨을 주제로 한 설치미술 작품을 만들게 되고 이를 전시한다.

캔디맨 괴담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90년 상류층의 초상화를 그리던 흑인 노예의 자식이 있었다. 어느 날 백인 대지주 딸의 초상화를 그리다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딸이 임신하자 아버지는 이 초상화가의 오른손을 자르고 온 몸에 꿀을 발라 벌에 쏘여 죽게 한다. 백인들은 죽어가는 흑인을 '캔디맨'이라고 놀리며,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볼 수 있게 했다.

캔디맨은 모든 원귀가 그렇듯 깊고 깊은 역사를 자양분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공포의 음습한 기운을 받아 성장한다. 영화는 이런 미스터리한 괴담에 흑인이 가지고 있던 죽음에 대한, 천형(天刑)에 가까운 공포를 더욱 짙게 채색한다.

백인 경찰들에 의해 총을 맞고 죽은 무고한 흑인을,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흑인 여학생을 불러와 캔디맨의 괴담과 연결시킨다. 흑인 예술을 하류 문화로 취급하는 백인 기득권 예술가들의 시선도 담아낸다.

안소니의 작품은 평단의 날선 비판을 받지만 그는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된다. 간밤에 일어난 사건 덕분이다. 드디어 안소니는 그렇게도 원하던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캔디맨의 비밀과 실체에 접근해갈수록 그의 주변에서는 뜻밖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영화 '캔디맨'의 한 장면
영화 '캔디맨'의 한 장면

안소니는 캔디맨 괴담의 상징성을 모두 갖는 인물이다. 노예였던 흑인의 후예,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의 계보를 안소니가 그대로 받았다. 초반부의 그림과 후반부의 그림이 상당히 다르다. 캔디맨의 공포가 엄습할수록 그의 터치는 거칠고 표현은 강해진다. 벌에 쏘이는 안소니 또한 캔디맨의 죽음, 심리적 공포와 연관이 지어진다.

조던 필은 '캔디맨'의 각본과 제작을 맡았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괴물에 흑인성을 부여한 1992년 '캔디맨'은 13살이던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니아 다코스타 감독의 영화 '캔디맨'은 그 미스터리한 괴담을 그리고 있지만, 1992년 원본의 공포적 충격보다 현대도시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캔디맨의 괴담,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잔재가 남아있는 흑인 인종차별의 뿌리를 그려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겁고 불길한 느낌의 음악, 강렬한 붓터치, 언제라도 튀어나올 듯한 음산함 등이 매력적인 공포영화다. 91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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