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억짜리 집 사면서 母에 19억 빌린 20대…편법 증여 '꼼수' 지적

주택 매입자금으로 '그 밖의 차입금' 신고 건수 폭등
시중은행 금리로는 턱도 없어…가족·지인간 대출 '증여세 피하기' 꼼수 지적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1 지난해 8월 A(24) 씨는 서울시 용산구의 한 주택을 19억 9천만원에 매입하면서 17억9천만원을 어머니에게 빌렸다. 주택 매입자금의 89.9%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가 해당 금액을 어머니로부터 증여 받았다면 5억1천992만원의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지만 이들은 가족 간 대출로 거래를 마쳤다.

20대 초반의 A씨가 해당 금액을 대출 받을 가능성도 낮지만 만약 그가 어머니가 아닌 시중은행에서 30년 만기, 연이율 2.70%, 원리금 균등분할상환을 조건으로 이 돈을 빌려야 한다면 그는 매월 은행에 726만원을 상환해야 한다. 과연 그는 매달 어머니에게도 이 돈을 상환하고 있을까?

#2 지난해 6월 서울시 용산구 이촌동의 한 아파트를 산 B씨는 아파트 매입 비용 31억7천만원을 모두 아버지에게 빌렸다. B씨가 해당 금액을 아버지로부터 증여 받았다면 10억6천700만원의 증여세를 내야하지만 이들 부자(父子)도 가족 간 대출로 신고했다.

B씨가 은행에서 30년 만기, 연이율 2.70%, 원리금 균등분할상환을 조건으로 이 돈을 빌렸다면 그는 매월 약 1천286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용산 빌라모습.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용산 빌라모습. 연합뉴스

치솟는 집값과 시중 은행의 대출규제로 가족, 지인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집을 구매한 사람들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편법 증여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아 분석한 주택자금조달계획서 자료에 따르면 주택매입자금의 절반 이상을 금융기관이 아닌 '그 밖의 차입금'으로 조달한 건수는 2019년 1256건에서 지난해 3880건으로 209% 증가했다.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올해는 4224건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1733건)보다도 144% 폭등했다.

소병훈 의원실에 따르면 '그 밖의 차입금'은 일반적으로 돈을 빌려준 사람과 빌린 사람의 관계가 가족이나 지인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이자 지급이나 원금 상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데다 증여세를 회피하려는 편법 증여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국세청 적발사례를 보면 또 지난해 의사 C씨는 증여세를 피해 자신의 아들에게 주택 매입자금을 증여하기 위해서 자신의 형 D씨에게 주택 매입자금을 전달하고, D씨가 자신의 아들에게 돈을 빌려줬다. 특히 C씨는 국세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이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한 사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급여를 지급해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교묘함을 보이기도 했다.

소병훈 의원은 "이처럼 가족이나 지인에게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돈을 빌려 집을 산 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며 "이들이 적정 이자율로 돈을 빌렸는지, 또 적정 이자율에 따라 주기적으로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고 있는지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소병훈 의원실 제공.
소병훈 의원실 제공.

특히 소병훈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주택매입자금의 50% 이상을 그 밖의 차입금으로 조달한 1만 2천115건 가운데 그 밖의 차입금으로 50억 원 이상을 조달한 건수는 5건, 30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을 조달한 건수는 18건, 20억 원 이상 30억 원 미만을 조달한 건수는 37건, 10억 이상 2억 원 미만을 조달한 건수는 281건으로 10억 원 이상 조달한 건수가 341건에 달했다.

만약 가족이나 지인으로부터 돈을 빌려 집을 산 이들이 은행에서 30년 만기, 연이율 2.70%, 원리금 균등분할상환을 기준으로 돈을 빌린다면, 50억 원을 빌린 사람은 매월 2천28만원을, 30억 원을 빌린 사람은 매월 1천217만원을, 10억 원을 빌린 사람은 매월 406만원을 내야 한다. 현실적으로로 상환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족관계를 이용해 무더기 주택 매매 자금이 오가는 셈이다.

소병훈 의원은 "대학을 갓 졸업한 만 24세 청년이 어머니에게 매월 726만원씩 상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며 "이는 5억 1992만원에 달하는 증여세를 내지 않기 위해 편법으로 증여한 사례로 보이기에 국토교통부와 국세청이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 의원은 또 "지금처럼 '그 밖의 차입금'을 이용한 편법 증여가 만연해지면 증여세법 근간이 무너질 수도 있다"면서 "국토부와 국세청은 그 밖의 차입금을 이용해 집을 산 이들이 적정 이자율에 따라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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