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바다 사랑하는 나라가 세계 이끈다

이헌태 국립해양과학관 상임이사

이헌태 국립해양과학관 상임이사
이헌태 국립해양과학관 상임이사

'지구의 중심'은 바다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설왕설래가 있겠지만 최소한 바다 없는 지구를 생각할 수는 없다. 아름다운 푸른 행성 지구에서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지구 전체 생명체의 80%가 바다에 살고 있다.

바다에 사는 식물 플랑크톤은 아마존 열대우림의 4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우리가 마시는 산소 70%를 생산하고 있다. 바다가 지구 생물들을 살리고, 인간을 살리고 있는 셈. 어떤 면에서 바다가 지구의 중심이고 육지는 주변이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유럽이 근대에 전 지구에 대한 지배적 영향력을 갖게 된 이유도 바다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한 게 500여 년 전. 이때부터 유럽 탐험가들에 의한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가 열렸다.

당시 영국의 탐험가 월터 롤리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마침내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었다. 유럽 국가들은 대항해시대에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식민지로 만들면서 사상 초유의 부강(富强) 시대를 열었다.

그때로부터 500년이 지난 지금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은 틀린 명제가 되고 말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바다를 지배해 온 국가들이 바다 파괴에 앞장서기도 했다. 과학기술 문명을 주도한 국가들이 지구, 특히 바다를 파괴하고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데 앞장서는 바람에 인류의 생존은 밑바탕부터 위협받고 있다.

바다는 지구온난화와 남획, 플라스틱 해양쓰레기로 육지에 비해 더 심각하고 빠르게 파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2048년에 바다는 모든 생물이 사라진 사실상 텅 빈 공간이 될 거라고 경고하고 있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바다를 가장 사랑한다면 세계를 이끄는 모범 국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바다 사랑을 위해서는 바다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지금은 바닷속까지 직접 탐험하는 시대이다. 현재까지 유인 잠수정으로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간 기록은 2019년 '빅터 베스코보'의 마리아나 해구 1만927m이다. 최근에는 햇빛도 없고 산소도 없는 심해 바닥의 열수분출공(熱水噴出孔) 주변에 많은 생명체가 살아 있어 지구 생명 탄생의 비밀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그런 심해에서도 플라스틱 해양쓰레기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동해는 최대 수심 3천742m(평균 1천684m)로 '태평양의 축소판'이고 '지구온난화의 실험장'으로 조사·연구 가치가 매우 높아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동해 심해를 연구하는 유인 잠수정 한 척이 없다.

바다 사랑과 연구에서 뒤진 우리나라는 지금이라도 바다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해양적 소양을 한층 높여야 한다. 학교 교육을 확대하고, 해양 관련 교육·체험 전시관을 확충하고 수준을 높이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또 바다와 관련된 기념일을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기며, 그에 따른 국민적 실천에 나서야 한다.

세계 물의 날(3.22), 바다 식목일(5.10), 바다의 날(5.31), 세계 환경의 날(6.5), 세계 해양의 날(6.8), 해양 조사의 날(6.21), 세계 수로의 날(6.21), 국제 연안 정화의 날(9월 셋째 주 토요일), 독도의 날(10.25) 등등.

조만간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바다를 가장 사랑하는 국가'라는 명성을 얻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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