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통섭의 시대

최재갑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내과 교수
최재갑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내과 교수

요즘 과학 에세이나 서적에서 '통섭(統攝)'이라는 단어를 가끔 접하게 된다. 통섭은 'consilience'라는 영어단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원래는 인문학이 자연과학에 흡수되는 지식의 통합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영역을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창의적 도약을 도출하기 위한 다학문적 접근'이라는 좀 더 폭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에서 학문 간의 소통과 협력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으며,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전자공학자가 뇌과학을 이해해야 하고, 사회학이나 심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통계학을 알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간주된다.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공급부족 문제로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는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개발과정을 봐도 학문간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모더나가 개발한 mRNA 백신은 기존의 백신과는 작용기전이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백신으로서 대학 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전통적 생명과학 기술과 현대의 나노의학기술의 융합으로 탄생했다.

즉, 하버드대학이 가지고 있는 인공 RNA를 이용해 원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기술에다 MIT대학이 가지고 있는 지질나노입자 기반의 체내 전달 기술이 접목됨으로써 기존 백신에 비해 초기 개발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고, 소규모 설비만으로도 대량 생산이 가능한 mRNA 백신이 세상에 선보이게 됐다. '모더나(Moderna)'라는 벤쳐회사도 두 대학의 교수들이 공동으로 창업했는데, 'Modified RNA'를 줄여서 만든 말이라고 한다.

세계의 모든 국가가 코로나19 mRNA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대통령도 모더나 CEO와 화이자 CEO 등과 직접 접촉하면서 코로나19 백신의 원활한 확보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수고에 고마운 마음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는 왜 이러한 백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지 못했는가'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물론 백신 개발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고 수년 내지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제약업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이해하지만, 이번 모더나의 성공 사례에서 보듯이 대학 간, 학문 영역 간에 소통과 협력이 활발히 이뤄지고,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있었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서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연구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연구자 개개인의 연구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학과 간, 대학 간, 학문 영역 간 교류와 소통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특히 의학 분야에서는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간의 협력이 지금보다 더욱 강화돼야 할 필요가 있으며, 기초의학의 연구 성과를 임상의학에서 실제 사용될 수 있는 단계까지 연계해는 중개연구에 더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더군다나 현재 대학과는 법적으로 완전히 별개의 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립대학교병원은 제도적 한계로 인해 대학의 의학교육과 의학연구를 지원해야 하는 대학교병원 고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이 하루 속히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최재갑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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