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10년 늙지 않고 집 짓기

장성현 경제부 차장
장성현 경제부 차장

주말이면 아이 손을 잡고 건축 현장에 들른다. 앞으로 우리 가족이 함께 살 단독주택이다. 착공 후 100일이 넘은 집은 뼈대를 세우는 골조 공사를 끝내고 내부 공사가 한창이다. 갖가지 공사 자재로 어지러운 현장을 아이는 조심스레 둘러보며 꼬치꼬치 묻는다.

아이는 자기 방을 어떻게 꾸밀지 고민 중이다. "여기엔 책상을 두고, 여긴 침대, 여기에는 비밀 연구소를 만들 거야." 언제까지 이곳에 살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기초 공사부터 지켜본 아이에게 이 집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을 터다.

집을 짓고 있다는 말을 꺼내면 주변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반짝인다.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장년층부터 층간소음 없이 아이가 뛰어노는 마당집을 꿈꾸는 30, 40대까지. 모두가 한 번쯤은 가져 보는 꿈인 듯하다.

사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도시인들에게 단독주택의 삶은 몽상에 가깝다. 사실 집 짓기는 도전과 선택의 연속이다. '집 짓다가 10년 늙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얘기가 아니다.

특히 도심 외곽에 터를 잡는다면 편리한 교통과 교육 여건, 편의시설 등 도시의 편리함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 '영끌'해서 지은 집이 재산 가치는 그만큼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다.

가장 큰 숙제는 '집을 짓는다'는 행위 자체다. 집을 다 짓기 전까지 품질을 자신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건축비가 3.3㎡당 1천만 원이 넘는 집을 지을 정도로 넉넉하다면 불안감은 조금 내려놔도 된다.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고, 이를 도와줄 전문가도 있다.

그러나 연면적 200㎡ 이하 소규모 주택에 3.3㎡당 500만~800만 원 정도를 들일 생각이라면 이제부턴 '돈'과 '운'이 크게 작용한다. 소규모 건축물 시장은 대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집을 지어 주겠다는 전문가는 많지만, 판단할 역량을 가진 건축주는 드물다. 건축 용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건축주가 태반이다.

이 범위 건축주의 목표는 대부분 '싸게 싸게 또 싸게'이다. 건축비를 낮추려는 의도가 강하다 보니 싸게 지어 주겠다는 시공자의 유혹에 혹한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건축주의 선택은 결국 '직영 공사'다.

직영 공사는 건축주가 현장 대리인을 두고 형틀, 배근, 타설, 설비 및 전기, 내장 등 각 공정별로 팀을 고용해 집을 짓는 방식이다. 밑그림인 설계 도면도 '허가방'이라고 불리는 설계사무소에 맡긴다. 이 도면은 건축허가를 받는 데에만 사용할 뿐 실제 건축에는 있으나 마나다.

시공자는 도면을 제쳐 두고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관행에 따라 집을 짓는다. 실력 좋은 팀이 오면 다행이지만 아닐 경우 훗날 하자로 직결된다. 경험에 의존하니 하자를 줄일 수 있는 공법이 있어도 적용하길 꺼린다.

새로운 공법은 다 '돈'과 직결되니 싸게 지으려는 건축주가 애써 요구할 이유도 없다. 소규모 건축물에 국가 시방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펴낸 '소규모 건축물 품질 향상 가이드'가 있지만 이를 언급하는 작업자는 만나보지 못했다.

모두가 아파트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단독주택은 정부의 관심 밖에 있었다. 건축주와 시공자 간의 정보의 간극을 채워줄 수단도 없고, 제도적 뒷받침도 부족하다.

정부는 건축 면허를 세분화해 소규모 건축물을 믿고 맡길 시장을 형성하고, 정부 차원의 표준 시방서도 마련해야 한다. 아파트가 아닌 자신의 집을 직접 짓고 싶은 이들도 안심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제도적 대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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