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시작부터 인간이 지닌 욕구와 사회적 동물로서 소통 본능의 결과였다. 이러한 미술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작가마다 그때 그 순간 맞닥뜨린 우연과 즉흥, 탐구와 실험이 뒤섞이면서 마치 마술적인 순간들의 연속으로 존속해왔다.
이요한 작 '이미 보았다는 느낌-5'은 딱 보는 순간 사각뿔의 조형언어 4개가 배치된 어떤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만약 사각뿔이 없었다면 화면 전체가 '어떤 공간'임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30대인 이요한은 최근 몇 년 사이 인간의 채워지지 않는 '결핍'에 대해 관심을 두고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그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평면 회화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페인팅 작업인 '디지털 회화작업'으로 마지막엔 판화지에 피그먼트(pigment·안료) 프린팅을 하는 '회화-디지털-인쇄'라는 3단계로 진행된다. 작품의 캡션 중 '하네뮬레 저먼 에칭'(Hahnemuhle German Etching )은 표면이 오돌토돌한 질감이 특징인 디지털 출력 전용 판화지를 지칭하는 말이다.
작가는 물리적 시간이 존재하는 공간을 설정한 후 그 안에 작가가 수집한 이미지와 경험한 비가시적인 것들을 형상화한 구조물로 채워, 그의 조형세계에서 화두가 되는 '결핍'을 3차원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사실 인간의 의식은 특정 기억을 제외하곤 불규칙적이며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처럼 손에 잡히거나 의식의 한켠에 오랫동안 선명하게 자리를 잡고 있진 않다. 이요한은 이러한 의식의 특성을 낚아채기 위해 찰나에 포착된 이미지를 건져 올리고, 정신분석학 용어인 '기시감'과 '차폐기억'을 차용해 작품화한다.
'기시감'은 현실 경험을 과거의 구체적 경험에 비춰 주관적으로 변조시킨 '이미 보았다는 느낌'이며, '차폐기억'은 고통스런 경험을 엄폐해 별로 대수롭지 않는 내용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의식의 작용이다. 이 둘은 정신적 고통의 완화를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이면서, 현실을 왜곡 또는 변형하고 은닉과 동시에 드러냄의 기능을 한다.
따라서 이요한의 작품 속에는 인간 욕구의 결핍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자리를 잡아가면서 서로 유기적으로 '부인'(否認)과 '인정'(認定)이라는 이중성을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결핍은 불안정한 상태를 의미하지만 제가 설정한 공간 안에는 자연현상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물들이 나름 자리를 잡아갑니다. 화면 속 현상과 사건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생성, 축적, 소멸돼 가는 과정의 한 지점을 정해 그것을 이미지로 옮깁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 화면을 다시 보라. 흰색의 큰 사각뿔은 여전히 공중에 떠있지만, 화면 아래쪽 세 개의 사각뿔은 의식의 한켠에 자리잡고 나름의 정렬된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옳거니. '결핍'을 주제로 출발한 작업은 완성되는 그 순간 작가가 의도한 조형세계와는 또 다른 의식 속 세계로 변주되어 가지만, 그 과정 자체가 이요한이 탐구하고자 하는 회화적 언어라면 성공한 것이다. 우연과 즉흥, 탐구와 실험이 뒤섞인 미술이 마침내 마술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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