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 법학전문도서관이 갖고 있는 도서들을 보면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면서 지금은 사라진 영남대 법과대학의 연륜을 실감할 수 있다.
이를테면 19세기 독일에서 활동했던 저명한 법학자 사비니나 예링의 저작을 법학전문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대학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은 법학자 와가쓰마 사카에(我妻榮)의 연구서도 빌려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필자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장서는 1946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한 법률 잡지 '법정'(法政)이다.
'법정'은 장후영을 중심으로 하는 법률가들이 1946년 9월에 창간한 법률 잡지이다.
1970년 12월호로 종간될 때까지 법정은 당대를 대표하는 법률 전문 잡지로 자리매김했다. 전문 법학 논문뿐만 아니라 고등고시나 사법시험에 관한 수험정보 등이 법정에 실렸다. 당시에는 현실 문제 해결이나 시험 합격 등에 기여하는 실천적인 기능이 강조되는 잡지였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 시대의 법적 논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가 된다.
이를 예증하듯 1940년대에 간행된 법정은 구하기 쉽지 않다. 소장되고 있는 경우에도 귀중본으로 지정되어 직접 대출받는 게 어렵다. 영남대 법학전문도서관은 이런 책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다.
필자는 연구하는 데 필요해 1940년대 후반에 나온 법정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이를 통해 당시 시대적 분위기가 어땠는지, 어떤 법적 문제가 이슈가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1940년대 후반은 미 군정이 실시되고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막 수립된 때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법정에는 미국법, 대한민국 헌법 제정 및 정부 수립의 기본 이념과 방향, 법전 편찬의 필요성과 방법, 귀속재산 처리, 제헌헌법의 경제조항 해석 등에 관한 연구가 다수 게재됐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와 중앙일보 및 동양방송 회장을 역임한 홍진기의 저작들이다. 해방 후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유진오는 제헌헌법이 담아야 할 이념이나 원리, 정부형태의 방향 등을 법정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해방 후 미 군정 사법부 법무관 및 대한민국 법무부 조사국장 등으로 일했던 홍진기도 당시 제기된 다양한 법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법정에 논문으로 제시하곤 했다. 유진오나 홍진기가 법정에 기고한 저작들은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법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동감있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인지, 어떤 원리와 체계로 우리의 헌법과 법률을 제정해야 하는지, 일본인이 조선에 남겨둔 귀속재산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국가는 시장에 어떻게 관여해야 하는지 등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흥미로운 사실도 발견한다. 당시 이미 경제민주주의가 일반적으로 승인되고 있었다는 점, 생각보다 미국법이 우리 법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 귀속재산 문제를 국제법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양천수 교수(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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