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판에서 해바라기가 종일 해를 바라본다.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해를 따라 해바라기는 목을 돌린다. 따스한 해를 쪼이며 영글어가는 그 모습도 해를 꼭 닮았다.
눈이 없는 해바라기에 어째서 해를 바라본다고 할까. '보다'와 '바라보다'는 다르다. '보다'가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라면, '바라보다'는 마음을 담아 보는 것이다. '바라보다'에는 대상을 향한 바람이 깃들어있다. 해를 따르고, 해를 닮으니, 눈이 없어도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는 것이다.
어린이는 해바라기와 같다.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듯, 어린이는 부모를 바라본다. 부모의 말과 행동을 배우고 표정까지도 따라 한다. 그것이 자기의 일인 것처럼. 꼭 엄마, 아빠가 아니어도 어린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어른은 '부모바라기'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학벌 좋고, 돈 많고, 유능한 부모만 어린이에게 본이 되는 건 아니다. 모자라고 가난한 부모라도 어린이에게 우상이 될 수 있다. 사랑으로 돌본다면 불편이나 가난이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어린이는 불평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제가끔 꽃을 피운다.
내 유년의 나날도 그랬다. 캄캄한 밤에 으슥한 오솔길을 걸어도 엄마 손을 잡고 있으면 무섭지 않았다. 골짜기에서 산짐승이 울어대도 엄마 품에서 달게 자고 고운 꿈을 꾸었다. 어떤 위험한 순간에도 엄마는 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믿음이 훗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걸음에 큰 힘이 되었다.
요사이 아동 학대를 전하는 뉴스가 잦다. 슬프게도 부모나 선생님이 범인인 경우가 많다. 마땅히 사랑을 베풀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학대한 사실은 우리를 더 분노케 한다.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어린이는 분명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만 화를 거두고 안아주기를, 환하게 웃으며 쓰다듬어 주기를 기대하면서.
가난하거나 못 배웠다고 해서 범죄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더 춥고 배고팠던 시절에도 부모는 자식을 뒷바라지했다. 가진 게 제 몸뿐인 짐승조차 새끼를 지키려 온몸을 던진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코로나19로 너나없이 삶이 어렵다. 가장이 직장을 잃어 경제적으로 흔들리는 집이 늘었다. 자식을 키우는 일조차 버겁다는 말도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그래도 부모는 견뎌야 한다. 힘들어도 웃다가 보면 웃을 일이 생기고, 서로 도우면 어려운 일도 수월해진다는 걸, 어린이에게 알려주고 보여줄 의무가 있으니.
어린이도 견디는 중이다.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져 마음껏 뛰놀지 못한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를 두니 친구 사귀기도 어렵다. 자칫 코로나 환자가 생기면 휴교를 해서 마음껏 공부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어린이는 자랄 것이다. 열심히 '부모바라기'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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