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기 전 말레이시아 유엔난민기구에서 난민 재정착 심사를 담당한 적이 있다. 난민 진술의 진위를 판별하는 마지막 단계이자, 제 3국으로 정착하는 난민을 돕기 위해 서류를 마련하는 절차가 재정착 심사다.
말레이시아로 넘어온 미얀마 난민을 주로 심사했는데, 그들은 늘 위축된 모습이었다. 소수민족으로 받은 탄압과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말레이시아 당국에 쫓기는 삶이 어깨를 웅크리고 고개를 떨구게 한 듯했다.
어느 날, 건장한 체격을 가진 젊은 남자가 심사실로 들어왔다. 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의자에 앉아 내 눈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심사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영어 구사력이 남달랐다. 오히려 옆에 앉은 통역사보다 나았다. 서둘러 그의 난민 파일을 뒤적였다. 이력이 궁금했다. 그의 파일은 다른 파일보다 훨씬 두꺼웠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성인이 되기도 전 말레이시아에서 불법체류자로 구금된 기록이 잔뜩 쌓여 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산 걸까.
파일에는 다음과 같은 진술이 적혀 있었다. "그의 부친은 미얀마에서 출판업에 종사했다. 1962년 네윈의 쿠데타 이후 이어진 독재정치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88혁명) 당시 주동 세력으로 끌려간 부친은 실종되었고, 모친은 곧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모친의 유언에 따라 외삼촌이 어린 그를 국경까지 데려갔고, 홀로 10년동안 고무농장을 전전하며 생존하던 그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내가 들은 이야기도 기록된 진술과 일치했다. 교육을 받은 기록이 없는데 어떻게 영어를 유려하게 구사하는지 묻자, 그는 종이에 적힌 단어를 사전으로 찾으며 독학했다고 말했다. 닥치는 대로 보고 익혔다는 말에 부친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술을 듣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진술을 마친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대뜸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한 난민은 처음이었다. 그는 내 이름도 알고 싶어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 사람은 내가 처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거칠고 투박한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는 캐나다로 떠났다. 사실 그와 나는 동갑이었다. 한 번씩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면 그때의 만남을 떠올린다.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국땅에서 씩씩하게 홀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멋진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을지도.
그와 나, 그리고 모두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
이수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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