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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가주의 타파 가치 내걸고 대선 출마하려 했었다”

"내년 대선에선 국민의 마음에 불을 질러 국민이 뛰게 할 리더십 갖춘 대통령 나와야"
"성숙해진 국민 믿고 '온전한 자유' 부여해야…국민 자유 향유할 충분한 능력 있어"
"진보는 성장, 보수는 분배 담론 장착해야 온전한 국가 미래 열 수 있어"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 매일신문 DB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 매일신문 DB

"과도한 국가주의가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어느 민족보다 훌륭한 우리 국민들이 신명나게 일하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온전한 '자유'를 부여해야 합니다. 터무니없는 규제들이 제2, 제3의 방탄소년단(BTS) 출현을 막는 상황을 끝내야 합니다. 국가의 임무는 안보와 사회안전망 영역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정치인과 관료가 국민보다 현명하거나 도덕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됐습니다. 자유가 가져올 일시적 혼란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져질 새로운 질서에 기대를 걸어보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지방자치도 가능합니다. 내년에 탄생할 새 대통령은 '나를 따르라'가 아니라 국민을 뛰게 하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캠프에서 가장 영입하고 싶은 인사 1위, 김병준(67)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28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여전히 활력 넘치고 유머감각도 녹슬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다.

이날은 김 전 위원장이 최근 펴낸 '국가,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야 할 곳에는 있다'(자유주의와 사회안전망을 위한 혁명)라는 제목의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자 만났다.

하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 대선정국 관전평도 물었다. 정치부 기자를 만나러 나왔으니 그 정도는 각오했다는 듯 김 전 위원장이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먼저 김 전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가슴 속에 품었던 대망(大望)을 공개했다. 그는 "사실은 이번에 내놓은 책에 담은 제 소신, 국가주의 타파를 국민들께 제대로 알리기 위해 직접 대선에 출마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당선여부와 상관없이 '여러분은 위대한 국민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대선무대라는 '마이크'를 통해 원 없이 외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뜻을 접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유력한 정권교체 카드로 야권에서 주목받고 있었고 지지율이 신통치 않은 후보는 진정성을 인정받기보다 '대통령병'을 의심받는 세태를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낙담하진 않는다. 현재 국민의힘 대선 경선 주자들 대부분이 김 전 위원장이 주창한 가치를 주요공약으로 소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각 후보 캠프의 부름공세도 이어진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고개를 가로젓는 중이다. 당의 '대표'를 지낸 사람이 당내 경선에서 특정 후보를 위해 움직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김 전 위원장은 "우리 같은 사람은 일을 해도 기존 정치의 틀을 깨는 탈(脫)여의도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캠프에 가더라도 마찰만 일으킬 뿐 도움이 안 될 것"이라며 "나중에 본선국면에서 당의 후보가 지혜를 빌리러 오면 내어줄 비단주머니 속 구슬 하나는 가지고 있다"고 했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 매일신문 DB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 매일신문 DB

'여야의 대권주자 가운데 어느 후보가 차기 대통령감이냐?'는 질문에는 다음의 설명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표현도 있지만 산업구조 개편과 연금·교육·노동시장 개혁 등 시대적 과제를 마주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옮겨야 할 태산 앞에 삽 하나 든 1인에 불과하다. 그 삽을 버리고 돌아서서 국민을 향해 '나는 못 한다. 혼자 못 한다. 국민들이 삽과 굴삭기로 도와 달라'고 설득해서 국민이 함께 뛰게 해야 한다. 국민이 하고자 하면 못할 것이 없다. 국민의 마음에 불을 지를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대통령과 여당에 도덕적 하자가 없어야 한다. 명확한 미래청사진으로 국민이 움직일 수 있는 동기도 부여해야 한다. 지금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칼자루 쥐고 흔들면서 다 해결하겠다고 설치는 분도 있는데 대통령은 그런 자리가 아니다."

본론인 책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김 전 위원장이 이번에 내놓은 책은 대선출마 의사를 접고 두문불출하며 죽기 살기로 쓴 책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를 못 하는 국가를 향해 날린 하이킥 정도가 되겠다.

김 전 위원장은 "국가가 반드시 있어야 할 안보와 복지 영역에서는 국가가 안 보이고 국민의 자율성을 극대화해 지속적인 혁신을 추구해야 할 대다수에 영역에서는 얼토당토않은 규제가 남발되고 있다"며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사업을 시작하거나 일을 벌여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규제의 함정에 빠져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 전 위원장은 "현 정부가 내놓는 복지정책은 사실상 복지파괴 행위"라며 "복지는 지속가능하고 성장에 도움이 돼야 하며 납세자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어느 하나도 충족하지 못 하는 매표행위성 퍼주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김 전 위원장은 국가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국민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방의원 출장비는 중앙정부가 제시한 범주 내에서 지방정부가 결정하는데 이런 접근방식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며 "이를 테면 중앙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5만원하던 지방의원 출장비가 10만원이나 100만원이 될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지역주민들을 졸로 보는 행태"라고 발끈했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 매일신문 DB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 매일신문 DB

지역민들은 권력을 감시·견제하거나 욕구를 절제하지 못 하는 존재로 치부하는 태도부터 고쳐야한다는 주장이다. 정치인이나 관료가 국민보다 똑똑하거나 도덕적이지도 않은데 왜 그들이 군림하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성장한 만큼 국민들의 역량도 함께 성장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고 주문했다.

김 전 위원장은 "과거 저성장 단계에서는 국가주의를 통한 효율성이 빛을 발하기도 했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은 몰라보게 성장한 국민들의 시민의식을 믿고 정부가 뒤로 빠지는 것이 순리"라며 "과거 어른 역할을 했던 국가는 늙었고, 예전에 어렸던 국민들은 이제 성인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성급한 자유부여가 방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일축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줄거리를 인용하며 "독재자 엄석대가 사라지자 일시적으로 혼란이 일어나는 듯 보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율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며 "기존 권위주의적 시선에서는 규제를 풀면 큰 일이 날 것처럼 얘기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권력에 의한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자율적인 질서가 자리를 잡는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 전 위원장은 진영논리에 갇혀 이념대결에만 골몰하고 있는 우리 정치권에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성장담론 없는 진보와 분배담론이 없는 보수는 사이비"라고 비판했다.

성장이 없으면 진보진영이 보듬고자 하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어려워지고 성장에만 매몰돼 소득균형이 깨지고 양극화가 심해지면 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증명이 된 상황에서 지금처럼 양 진영이 편협한 시각으로 공방만 벌여서는 국가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국가와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 역할도 재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김 전 위원장은 "앞으로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국민들께 인사를 드릴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번 책에서 강조한 내용(국가주의 타파)을 가장 잘 구현하는 있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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