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사진 한 장이었다. 1956년 1월 8일 낙동강 다방에서 열린 대구음악가협회 발기인 모임 사진이다. 대구음악가협회는 '6‧25전쟁이라는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도 오직 향토 음악예술 향상만을 위해(이점희 육필원고 中)' 모였던 대구음악연구회(1952년 결성)가 전신이다. 음악가 이점희(1915~1991) 선생의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이 사진 한 장에는 1950년대 지역 음악계를 대표하는 음악인들의 모습이 다 담겨 있다.
김진균, 임성길, 최병준, 이상필, 성기용, 김종환, 하대응, 장안나, 이경희, 이기홍, 이점희 등 작곡, 합창,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지휘 등 분야도 다양하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된 분들이라 유족들로부터 웬만큼 자료를 입수하기는 했으나, 미처 찾지 못한 분들도 있었다. 해외로 떠나 현지에서 작고하신 분을 제외하고, 다시 꼼꼼히 추적하기로 했다.
그 중 가장 큰 성과를 얻은 분이 바로 작곡가이자 음악학자인 김진균(1926~1986) 박사이다. 박사의 딸 김은숙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선친이 작고한 후 무려 35년 동안 그의 예술 활동 자료들을 소중히 보관해 왔다. 김 교수 또한 서울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음악가의 길을 걸었으니, 자료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음에 틀림없다. 그는 선친의 원고들을 모아 2015년 『1952년부터 1985년까지 음악풍경(음악학자 김진균의 신문글 모음)』이라는 책도 펴냈다.
김 교수는 필자와 처음 만났을 때, 예술가의 자료는 '공적(公的)'으로 보관‧활용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몇 차례 만남을 통해 조금씩 자료들을 내주셨다. 훼손될 우려가 있는 자료들은 모두 복사본을 만들어 활용이 쉽도록 했고, 활동 분야별로 꼼꼼히 분류‧정리해서 넘겨주셨다.
그렇게 해서 옮겨온 자료들은 김진균 박사가 1940년대부터 작곡한 작곡 노트와 작곡집, 악보, 연주회 자료 등 140여 점이다. 그 속에는 가곡 '노래의 날개'와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 등 김 박사의 대표작과 미완성, 미발표곡 육필 악보가 포함되어 있다. 김진균 박사는 예술가곡을 개척한 작곡가로서 이름 높고 또 음악학을 연구한 음악학자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그를 수식하는 '음악학'이라는 분야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하다. 그는 1959년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서양음악사, 비교음악학을 전공하고 1964년 논문 '한국 민요의 비교 음악학적 고찰'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계명대와 경북대에서 후진을 양성하면서,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번역서를 발간했다. 그의 일관된 관심은 '한국민요와 전통 음악' 연구였다.
음악학자로서의 그의 면모는 1950년대부터 작고하기 전까지 꾸준히 일간지를 통해 남긴 글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그 중 1950년대 글에서는 어려운 시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동료 음악인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음악과 진실- 구왕삼씨의 음악시평을 박(駁)함」이라는 제목으로 1953년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세 차례 일간지에 게재한 글이 흥미로웠다. 구왕삼(1909~1977)이라면 광복 후 경북사진문화연맹을 창립하고 사진비평가로도 활동한 1세대 사진가 아닌가. 그는 동요작곡과 음악평론 활동도 했다. 도대체 구왕삼이 어떤 내용으로 음악시평을 남긴 걸까.
구왕삼은 '대구음악연구회의 활동이 진정한 연구단체냐, 한갓 사교단체냐 헷갈리며, 대구의 음악계가 연주가 역량 부족으로 잡종 음악형태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비평을 했다. 이에 대해 김 박사는 '구왕삼씨의 글은 무책임한 음악 잡감이며, 시대현실에서 유리되었다'고 토로하고 '이제 육성되어 가는 대구음악계에 오해가 생길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반론을 게재한다'며 조목조목 반박해놓았다.
김 박사의 글에 대한 구왕삼의 반박 기고문도 이어진다. 1953년 8월 1일자 일간지에 구왕삼은 「음악시평의 모독- 김진균군의 궤변에 답함」이라는 글을 실었다. 신문비평 이후 자신이 '테너 이장환이라는 사람에게 백주 미국문화관 내에서 테러를 당했으며, 김진균은 기고를 통해 남의 이론에 불복하고 욕설과 같은 곡해했으니 그것을 풀어주겠다'며 꼼꼼하게 다시 반박하고 있다.
'비평 부재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오늘의 예술계를 생각하면, 1950년대 초반 신문지상을 통해 각자의 예술론을 펼치며 난투(?)를 벌인 당대 예술가들이 활약이 그 시절의 낭만처럼 느껴졌다. 1950년대 음악인들이 남긴 사진 한 장이 당대 예술계 풍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기증해 주신 김은숙 교수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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